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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6월 21일 금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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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고통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지어내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경우는 대처방법이 비교적 간단합니다. 담장이 무너졌으면 고치면 될 테니까요. 그러나 내부에서 일어난 경우는 다릅니다.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지어낸 고통이기 때문에 그 고통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의 대부분은 ‘비교하는 마음’이 빚어내는 고통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성이야기 111」에 나오는 돼지 이야기에서 그런 마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식 모두를 출가시킨 어느 노인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돼지와 고양이를 키웠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안방이든 창고든 제 맘대로 돌아다니며 온갖 재롱으로 노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면 노인의 밥상머리에 앉아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곤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돼지는 고양이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난 이렇게 매일 지저분한 음식 찌꺼기나 먹고 오물더미에서 자는데, 저 녀석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인님 잠자리까지도 독차지하잖아. 나도 이제부터는 저 녀석처럼 재롱을 떨어야겠다. 그러면 주인님이 나도 사랑해주실 거야.’

다음 날, 점심을 먹던 노인에게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에서 나와 식탁으로 걸어오는 돼지가 마치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으니 그것을 본 노인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노인이 놀라 자빠지자, 돼지는 고양이가 평소 하던 것처럼 노인의 손바닥을 투박한 혀로 마구 핥았습니다. 노인의 비명소리에 놀란 이웃들이 달려와 돼지를 실컷 두드려 패고는 우리에 다시 가둬버렸습니다.

비록 우화이긴 해도 돼지가 고양이처럼 걷는 모습, 노인의 손바닥을 고양이처럼 핥아대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 돼지의 삶처럼 ‘나’도 남들과 나를 늘 비교하며 살고 있진 않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정신이 번뜩 듭니다. 돼지는 돼지답게,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살면 그만일 텐데 말입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쓴 아잔 브라흐마는 이렇게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이라고 칭한 브라흐마는 다음과 같이 조언해줍니다.

"가난할 때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자 중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진실한 우정과 온갖 의무로부터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부자가 되는 것은 단지 ‘가난한 자의 고통’을 ‘부자의 고통’과 바꾸는 것이다. (…) 모든 게 다 그렇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비로소 기혼자가 독신으로 사는 친구들을 왜 부러워하는지, 또는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이 결혼한 친구들을 왜 부러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혼자 사는 삶은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품은 삶입니다. 자유로움은 기쁨이고 외로움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외로움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면 외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기혼자들의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습니다.

결혼생활은 자유로움 대신에 구속받는 삶이지만 함께 살기 때문에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혼자는 자신의 구속받는 삶만을 탓하며 독신자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며 아파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타인의 고통과 맞바꿔 버리고는 힘들어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아잔 브라흐마는 아주 명쾌하게 ‘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습니다. 결혼을 했으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짝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되고, 미혼의 길을 선택했다면 자신의 삶이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삶임에 감사하며 살면 그만입니다. 이들 모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삶을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행복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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