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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사에서 1915년은 영화의 생일인 1895년 12월 28일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로 거론된다. 최초의 장편 극영화 ‘국가의 탄생’이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해이기 때문이다.

 탄생 초기 1분 안팎이었던 영화의 러닝타임은 19년 동안 20분 내외로 길어졌지만 단순한 스토리 속에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도록 촬영과 편집, 연기 등의 영화적 요소들이 내러티브에 종속돼야 했다. 그래야만이 개연성 있는 영화적 현실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D.W.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이 위대한 까닭은 193분이라는 전례 없이 장대한 러닝타임 속에 관객들을 몰입시킨 영상 문법의 성취에 있다고 하겠다. 에피소드의 시작과 끝을 알려 주기 위해 화면이 점점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효과인 페이드인·아웃의 활용은 관객들이 서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고, 전체 풍경을 보여 주는 롱숏이나 인물의 얼굴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 숏 등 다양한 숏의 활용은 감정이입을 도왔다. 특히 그는 이 작품에서 각각의 사건을 교차해 보여 주는 교차편집을 효과적으로 연출해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세련된 연출은 스토리가 있는 장편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 이유로 D.W. 그리피스 감독은 현대 영화의 아버지이자 모든 감독들의 스승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리는 ‘그리피스 상’이나 ‘그리피스 시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스토리 자체의 오점에 기인한다.

 미국 북부의 스톤맨 가문은 남부의 카메론가와 친교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두 집안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흑인 노예 문제가 백인 간 다툼과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이후 전쟁이 북쪽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흑인은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되고, 이는 국가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투표권을 얻은 흑인들은 자격 미달의 의원들을 선출하는가 하면 흑인과 백인 간 결혼 합법화, 백인 특권 시설 철폐 등의 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해 백인 의용군이 창설되는데, 이들은 흰 두건을 쓰고 흑인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KKK’라 불리는 단체였다. 백인사회는 포악하고 무식한 흑인에 대항하는 ‘KKK’에 환호한다. 그리고 ‘악’이 사라진 이상적인 사회를 염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비록 그리피스 감독은 극렬한 차별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전해지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미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왜곡된 시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 결과 ‘국가의 탄생’은 장편 극영화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나 편협한 세계관으로 사회적·윤리적 논쟁을 촉발시킨 첫 번째 영화로도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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