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전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jpg
▲ 홍순목 PEN 리더십 연구소 대표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수를 사 먹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웃으면서 반신반의했다. 선생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중동에서는 원유보다 생수가 더 비싸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가 선생님 말씀을 믿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흔하게 접해왔던 수돗물 때문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옆에는 수돗물이 있었고 우리들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뛰놀다가 달려가는 곳이 수돗가였다. 수돗물로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도 감고 얼굴도 씻으면 시원했고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며 마른 목을 축이기도 했다. 학교에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던 친구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조용히 교실을 나와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에 가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던 때였다.

 수돗물에 대한 안전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끓여 먹으면 이상이 없다는 말에 집집마다 보리차와 결명자를 끓여 먹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구수한 내음이 기억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누구나 갖고 있었을 수돗물과 관련된 좋은 추억들이 한숨과 악몽으로 변하고 있다.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서구의 일부지역에서 시작된 적수사태는 서구를 넘어 영종, 강화에서도 그 피해사례가 접수되면서 인천시장이 여러 번 사과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불거졌다.

 최초로 민원이 발생한 초기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인천시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사건 발생 후 3일이 지난 시점에 수돗물을 채취해 검사한 보고서를 각 학교와 아파트에 보내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여전히 붉은 수돗물을 목도하는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적수사태에 대한 행정당국의 오락가락 행정은 불신을 배가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수돗물을 검사한 결과 각종 항목에서 기준치 이하로 판명됐다며 보고서를 배포한 그날 밤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해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인천시의 공식보고서를 믿고 정상 급식을 실시하려던 학교는 큰 혼란에 빠졌다. 사태의 중반 즈음에 음용수로 부적합하다는 환경부 관계자의 코멘트가 방송에 나간 후 환경부에서 해명자료를 배포해 음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SNS에 올라온 해명을 보며 시민들은 수돗물을 먹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했다. 그러는 중에도 오염된 필터 사진과 피부 트러블이 발생한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환경부는 최종 조사를 통해서 적수사태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작동 오류와 고장을 방치한 인재라는 발표와 함께 수돗물을 음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부랴부랴 뒤늦게 인천시는 보상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피해를 어떻게 다 보상할 수 있을는지 무슨 보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시민들은 코웃음만 칠 뿐이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를 넘어 피해지역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무리 음식점 앞에 생수를 쌓아 놓고 생수로 조리를 한다고 말을 해도 시민들은 피해지역의 음식점 출입을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매출은 반 토막 이상으로 떨어졌다.

 3기 신도시 발표로 가뜩이나 침체된 아파트와 상가 거래는 끝 간 데를 알 수 없다. 도시철도 2호선으로 반짝했던 원룸도 빈 집이 늘어나는 형편이다. 기피지역으로의 낙인효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천시와 환경부는 이달 27일부터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확대 재생산 단계로 전환된 불신의 파급효과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수돗물 정상화와 임시방편의 보상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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