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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요즘 대중음악에서 뉴트로 음악을 표방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잔나비라는 밴드가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또 다른 유행이라 할 수 있다.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레트로(retro)는 주로 대중음악과 패션 분야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추억, 회상, 회고를 뜻하며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지나간 과거의 전통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되살리는 흐름을 말한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감각과 시대 분위기를 현대에 접목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한다.

 그래서인지 잔나비 밴드의 유행을 쫓지 않는 ‘올드팝’ 감성과 독특한 멜로디, 그리고 특유의 음색은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떤 노스탤지어에 젖어들게 하며, 아날로그적 감성은 열풍을 일으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고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신대중음악의 새로운 조명과 찬사를 받으며, 각종 예능분야까지 섭렵하며 인기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잔나비 밴드에게 한동안 위기설이 있었다. 밴드의 한 멤버가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가해자 의혹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들의 활동에 비상등이 켜지게 된 것이다.

 필자도 잔나비 밴드의 음악을 자주 듣는 팬이다. 물론 젊은 세대와 많은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음악에서 추억과 향수에 젖어 들게 하는 감성과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이 아무리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으고 박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사건의 연루자라는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이 추구한 음악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를 순식간에 거품처럼 스러질 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과거에 머무는 집착보다는 미래로 향한 희망을 택했다. 지난 15일 잔나비 밴드는 성남시청이 주최한 ‘파크콘서트’ 무대에 올라섰다. 공연 전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날씨마저 악천후임에도 공연장에는 2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해 잔나비 밴드의 공연을 공감하며 즐겼다. 이날 잔나비는 올해 상반기 음원 차트 정상을 휩쓴 ‘전설’ 과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비롯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꿈나라 별나라’ 등 대표곡들을 여과 없이 팬들에게 선사했다. 감성을 적시는 감미로운 라이브부터 강렬한 카리스마를 폭발시킨 무대까지 잔나비밴드의 열정이 고스란히 팬들의 가슴속을 파고 들었다. 잔나비 밴드의 과거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 네티즌들의 댓글을 관대했다. 대부분 ‘과거가 미래를 지배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국민은 그만큼 성숙했고 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 앞에 놓인 우리나라의 정치세계를 봐라. 아직도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질 않는가. 그것도 거의 반세기를 넘겨 한 세기가 다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제강점기에 부역한 자들과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협력한 부역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이 나라가 발전은 안중에도 없이 또 다른 내홍을 불러일으키며 온 나라의 국민을 편을 갈라 이간질과 싸움질을 부추기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들은 왜 일본의 앞잡이가 됐고 한국전쟁 시 왜 그들은 북한군의 앞잡이 됐는지 한 번 정도 냉철히 생각해봐라. 그것은 분명, 무능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으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던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원죄를 슬그머니 감추고 부역을 했다고 국민에게 뒤집어씌우는 옹졸한 행태는 이제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 6월은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있는 달이다. 이로 인한 국민 간의 갈등은 아직도 상존해 있다. 말로만 ‘국민 대통합과 화합의 장’ 이라는 구호만 내세우지 말고 정파와 당파를 초월해 정말 화합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성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 의해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회귀해 발목을 잡을 경우 그 역사는 다시 불행해진다. 과거 유행했던 대중가요처럼 우리 민족의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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