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jpg
▲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지난달 초 서울 대학로에 ‘차 없는 거리’가 부활했다.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사거리까지 960m의 거리에서 ‘대학로 차 없는 거리’가 시범 운영됐는데, 넓은 대학로의 차도가 보행자 천국이 돼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이지만 대학로에서 차량이 통제된 것은 30년 만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대학로 차 없는 거리의 주제를 ‘오다, 가다, 쉬다’로 정했다. 승용차를 피해 다녔던 두 발이 자유로운, 사람이 주인이 되는 도심 속 쉼터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또한,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저탄소 친환경 문화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는 의도도 담겨있다고 한다.

 

 차 없는 대학로 넓은 거리에서는 사물놀이와 타악기 퍼포먼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다양한 기법의 미술작품을 만드는 ‘페인터즈’의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도 전개돼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굴렁쇠나 사방치기, 보드게임 등 어린이 놀이도 할 수 있어서 가족 단위로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서울의 차 없는 거리는 대학로뿐만 아니라 ‘덕수궁길’과 ‘청계천로’도 있다. 직장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덕수궁길의 차 없는 거리는 대한문에서 원형 분수대 구간(310m)으로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청계천로는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구간(880m)으로 주말에 운영되는데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10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변한다. 그 밖에 세종대로도 일요일마다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 종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10월부터는 강남권에까지 차 없는 거리가 확대 운영될 전망이다. 자동차 대신 사람으로 가득 찬 서울의 도심 여러 지역의 대로에서 활기차고 즐거운 모습의 시민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차 없는 거리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예산도 필요할 것이고, 도로 주변 상가와 방문객, 인근 주민들의 여론과 동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차 없는 거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도 세밀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고, 여러 단계의 행정 절차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차 없는 거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돼 지금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여러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차 없는 거리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할 때는 주변 상인들을 중심으로 반대가 매우 심해서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부 지역은 많은 예산을 들여 기초 시설을 갖추고 시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한 사례도 있다. 사전 준비가 소홀했던 데다가 홍보 부족과 시민들의 무관심까지 겹쳐 아까운 세금만 낭비한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한 지역의 사례들이 일반화되고, 차 없는 거리의 장점이나 효용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점차 확대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미 차 없는 거리가 정착된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차 없는 거리가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역의 차 없는 거리 사업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벌써 20회를 넘어서서 이젠 안정화 단계에 올라선 것으로 보이는 ‘부평 풍물 대축제’가 가까운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년 늦가을, 고작 이삼 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차 없는 부평대로에서 전국의 대표적인 풍물 팀들이 모여 풍물 축제를 벌이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거창한 주장은 차치(且置)하고서라도 차 없는 거리에서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마음 놓고 참가팀들의 열연에 갈채를 보내며 즐기는 모습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가?

 이제 차 없는 일상(日常)은 상상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이런 모습은 날이 갈수록 심화(深化)될 것이다. 여러 곳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도 넓은 차로(車路)와 자동차들이다. 시내 어딜 가더라도 주차난이 심각하고, 심지어 도로 옆 골목까지도 자동차들이 진을 치고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기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주말이나 매월 한 차례 정도만이라도 곳곳에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시민들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전국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서울 도심 차로도 차 없는 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대학로처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곁들여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단 몇 백 m만이라도 좋다. 수많은 자동차가 질주하던 대로를 걷는 기분이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할 것인지를 시민들이 직접 실감해 보게 하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