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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군 복무하던 시절엔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상관의 관등성명, 군가 외에도 소위 ‘암기사항’이라는 것들이 많아서 병사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줬다. 암기를 못한다고 괴롭힘을 당한 병사가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병사들의 공포 대상이었던 암기사항 중에는 ‘군인의 길’이란 것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나, 우리는 국토를 지키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친다. 둘, 우리는 필승의 신념으로 싸움터에 나서며, 왕성한 공격정신으로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 셋,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하고, 명령에 복종하며, 엄정한 군기를 확립한다. 넷,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을 즐거이 받으며, 새로운 전기를 끊임없이 연마하여 강한 전투력을 갖춘다. 다섯, 우리는 존경과 신뢰로써 예절을 지키며, 공과 사를 가리어 단결을 굳게 하고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여섯, 우리는 청백한 품성과 검소한 기풍을 가지며, 군용시설을 애호하고 군수물자를 선용한다. 일곱, 우리는 국민의 자제로서 국민을 위하며, 자유인의 전우로서 자유인을 위하는 참된 역군이 된다."

 제법 괜찮은 내용인 것 같긴 하지만, 이를 줄줄 외우기는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군인의 길’을 암기하도록 강요한 이유는 병사들의 머리에 ‘충성심’을 각인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충성(忠誠)’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진정(眞情)’이란 또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충성의 핵심은 ‘참’ 곧 ‘진(眞)’이며, 충성은 ‘거짓을 배격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군인의 길’ 내지 ‘군인정신’은 ‘정직’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실되고 정의롭고 의연하고 씩씩한 사람을 가리켜 ‘군인답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최악의 ‘불충(不忠)’이며 ‘배신(背信)’이다. 그런데 종래 우리 군에서는 임기응변식 거짓말이 자주 통용되기도 한다.

 최근에 발생한 소위 북한 소형 목선의 동해 삼척항 ‘해상 노크 귀순’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정경두 국방장관이 연이어 대 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자 엄정 처벌 등을 약속했으나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군의 가장 기본적 임무가 바로 ‘경계’인데, 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국민들의 질책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경계 실패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의 초기 발표에 허위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군은 그야말로 존립의 기초를 잃게 된다. 더욱이 국민들은 과거에 군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의심하는 사례들(의문사 사건 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자주 언급되지만, "거짓말을 하는 군인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는 점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군은 국민들이 의혹을 갖는 부분을 엄정히 조사해 ‘진실 그대로’ 국민에게 밝혀야 하며, 혹시 왜곡·은폐한 사실이 있다면 관련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는 등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야당에서 "대통령을 군 형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는 등 이 사안을 지나치게 정치쟁점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일단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정직(正直)’은 군인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 모든 직업인이 지켜야 할 직업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며, 신의성실의 요체(要諦)다. 그러므로 ‘정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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