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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해수욕은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몸을 씻고 즐기는 것으로 해수욕장은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갖춰진 바닷가의 시설물을 말한다. 그래서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닷가는 여름철 피서나 휴양을 위한 바캉스를 연상하게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유형의 해수욕장 역사는 그리 긴 편이 아니다.

 해수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료와 요양의 의미에서 시작됐는데 1754년 영국 브라이튼 해변에 설치된 해수치료요양원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일본의 해수욕장은 메이지 시대 초기 탄생했는데 서양과 같이 군인들의 병 치료라는 목적으로 이용됐고, 이후 1880~1902년 사이에 공용 해수욕장 3개소와 사설 해수욕장 33개소에 탈의장과 숙박업소를 설치하고 교통편(기차)을 연계했다 한다.

 조선은 개항과 함께 일본에 정착한 서구의 문화가 조선에 이주했던 일본인에 의해 소개, 유입됐다. 해수욕장은 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인천, 부산, 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먼저 설치됐는데, 해수욕 문화를 선도한 것도 역시 일본인이었다. 여기에 일본을 왕래하는 상인과 유학생들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이 일본의 해수욕장 문화를 체험하면서 해수욕을 여가와 유흥으로 즐기는 것으로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얕은 수심과 길게 펼쳐진 백사장, 갯바위와 기암괴석 등의 풍광은 고급스러운 휴양과 청춘의 로맨스, 자본주의적 소비 창출이라는 미래의 문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1912년 7월 매일신보는 ‘인천해수욕장’의 개장을 알리면서, 조선 ‘유일’의 하계 유락지로 건강을 위한 피서지라 선전하고 있었다. 탈의장과 납량대(納凉臺, 다이빙대) 4동을 준비하고 일요일마다 경인 임시특별열차를 운행할 뿐만 아니라 임시열차 왕복 할인권도 발행했다. 또한 해수욕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경품 제공과 ‘보물찾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 최초로 해수욕장이 설치된 곳은 괭이부리 묘도(猫島)였다. 묘도해수욕장이 탄생하게 된 것은 당연 인천 거류 일본인 자본가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1906년 일본인 사업가 이나다는 만석동 일대 33만여㎡의 매립을 완료했지만 공장 일부만 유치했을 뿐이었다. 이에 만석동이 해안과 근접한 것에 착안해 이곳을 유원지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묘도 가는 길에 해수탕과 고급 음식점을 갖춘 ‘팔경원(八景園)’이라는 위락시설을 세웠고, 1911년에는 ‘묘도유곽(遊廓)’을 만들었다. 이어 그 일환으로 1912년 묘도해수욕장을 설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묘도해수욕장이 일본인의 문헌자료에서 언급조차 없었던 것은 당시 교통편도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생소했기 때문에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1918년에 가서는 ‘인천’해수욕장이라는 명칭도 월미도로 대표되고 재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근대적 관광이 가능하게 된 것은 철도의 영향으로, 관광의 편안함과 편리를 제공했다. 거기에 사람들을 해변으로 몰아간 것은 언론의 힘이 작동했다.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총독부 철도국이었다면, 매스미디어는 은밀하게 관광붐을 조장했고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유원지 홍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직접 관광단을 꾸리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13년 부산 송도해수욕장이 개장되고 이후 전국적으로 해수욕장이 설치됐지만 초기에는 외국인들만을 위한 전유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츰 중산층과 노동자들 또한 휴가철을 이용해 해수욕장에서 지친 몸을 충전시키는 재생의 공간으로 활용돼 갔다. 그럼에도 퇴폐적 소비시설과 유흥시설이 함께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의 지식인들로부터 해수욕장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낙원을 연상시키는 이중적인 잣대를 갖게 했다.

 개항 이래 서구 문화의 유입은 시대적 흐름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보다 한 발 앞서 서구 문물의 선진화를 이룩한 일본은 조선과의 비교 우위를 통해 조선 지배의 당위성을 과시하려 했고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희석하는 망각의 기제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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