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 심의 법정 기한인 지난달 27일 회의를 열었으나, 사용자위원의 전원 불참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전날 회의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이 부결되고, 월 환산액 병기 안건이 가결된 데 따른 여파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사용자위원들의 불참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급적이면 조속한 복귀를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박 위원장이 뭘 이해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자영업과 중소기업 등) 이해당사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아무 관련이 없는 자들이 이렇게 손쉽게 결정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파행이 지속되는 상황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최저임금법상 근로자위원이든 사용자위원이든 2회 이상 출석 요구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불참하면, 어느 한쪽이 전원 불참한 상태에서도 의결이 가능해진다. 이번보다 더 심한 최악의 결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용자위원의 불참은 재고돼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관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근로자·사용자 대립은 해마다 반복되는 고질적 현상이다. 늘 그렇듯 심의 과정은 파행의 연속이고, 어떤 결과가 도출돼도 어느 한쪽은 (때로는 양쪽 다) 수용하지 않는 식으로 끝이 난다. 잘못된 ‘틀’ 때문이다. 현행처럼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이 심의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머릿수가 너무 많다. 각자 3분씩만 얘기해도 영화 한편 보는 시간이 지나간다. 무슨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겠나. 공익위원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정부의 역할은 중재 및 조정 기능 수행이다. 정부가 진영 논리에 따라 어느 한쪽이나 편드는 거수기 노릇을 해서야 되겠나.

 최저임금의 개념·역할·한계도 다시 검토돼야 한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무려 29% 넘게 인상됐지만, 오히려 빈곤층보다 중산층 이상에서 수혜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층 내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적거나, 고용·최저임금 간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허점 투성의 제도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완전합의제 방식의 영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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