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남현.jpg
▲ 곽남현 인천시 도시녹화팀장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쓴 「총, 균, 쇠」라는 책에는 인류의 문명, 미생물, 전쟁 등 지구상에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생물과 문명의 진화 과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과 멸종에 대해 생물지리학, 진화생물학, 민족생태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인류는 처음 이동 수렵 생활에서 시작해 정착 생활로 발전하면서 야생의 식물 먹거리가 어떻게 작물화됐고, 야생동물이 어떻게 가축화됐는지? 식물과 동물, 인간의 생존과 멸종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야생의 먹거리가 작물화되기까지는 1만 년 이상이 걸렸다. 동물과 달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맛좋은 과육으로 씨앗을 감싸 동물의 먹이가 되는 등 자연의 힘과 동물을 이용해 자손을 멀리 퍼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배고픈 동물이 과일을 따먹고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하도록 하여 수천 ㎞까지 멀리 운반된다. 어떤 식물 종들은 좀 더 멀리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동물의 뱃속에서도 소화되지 않고 오래 버티도록 진화했다. 흙돼지 같은 특정 동물의 뱃속을 통과해야만 발아가 되는 박과의 씨앗, 과육 색깔의 변화를 이용해 새의 먹이가 되는 씨앗, 다람쥐를 이용하는 도토리, 박쥐를 이용하는 망고, 개미를 이용하는 사초류 씨앗,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해 자신의 자손을 멀리멀리 퍼뜨린다. 식물은 동물들이 선호하는 자연 선택 과정을 거쳐 작물로 정착됐다. 총 20만 종의 야생식물 중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하다. 그 중에 작물화에 성공한 종은 수백 종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현대 농작물 총생산량의 80%를 책임지는 작물은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 감자 등 겨우 12종에 불과 하다.

 동물이 가축화된 시기는 B.C. 8000∼2500년께라고 한다. 식물의 작물화 시기와 비슷하다. 결국 수렵 채집 생활에서 농경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가축화가 시작됐다. 오랜 세월 동안 148종의 대형 포유류가 무수한 가축화 시험을 거쳤는데, 시험에 통과한 종은 개, 양, 염소, 돼지, 소, 말 등 겨우 14종만 성공했다. 나머지 134종은 왜 실패했을까? 야생 후보종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특성을 갖춰야 한다. 필수적인 특성 중에서 단 한 가지만 결여돼도 실패하고 만다. 즉, ‘행복한 결혼을 만들려는 조건 중 단 한 가지만 결여돼도 결혼에 실패한다’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집단생활이 시작되면서 세균도 자연 선택의 산물로 진화를 거듭했다. 인류 역사상 부족이나 국가의 멸종이 칼이나 총과 같은 무력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인구가 많은 문명 집단에서 인구가 적은 열세 집단을 침략했을 때 무기에 의해 정복당한 사례보다 세균의 감염에 의해 멸망한 사례가 많았다. 세균에 대한 면역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침략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홍역, 볼거리, 결핵, 백일해, 페스트, 콜레라 등 세균은 동물의 몸속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진화했다. 사람의 몸을 숙주로 하는 세균들에게 농경의 발생이 큰 행운이었다면, 도시의 발생은 더 큰 행운이었다. 도시에 집중된 많은 사람은 모두 세균의 숙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가축에게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동물 간 숙주를 이용해 전염된다. 전쟁에서 화학무기로 사용하려는 탄저병균과 식물의 탄저병은 전혀 다른 균이다. 식물에 발생하는 병은 동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요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전염된 돼지는 고열, 구토, 피부 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10일 내 100% 폐사한다. 인천시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방지를 위해 북한 접경지역 점검과 방역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응에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아스피린, 은행나무 기넥신, 주목열매 택솔 등 식물은 동물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물질을 많이 갖고 있다. 자연 자원의 보고인 식물에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균의 생육 특성을 제어할 수 있는 신물질이 추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도시에서 인구밀도를 완화할 수 있는 자연환경 보존과 공원녹지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녹지 정책을 펼친다면 사악한 세균의 발생도 저감시킬 수 있을 것이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