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301010001258.jpg
▲ 조가을 인천미추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수사3팀 경사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직까지 합의된 정의는 없으나,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판례상 성범죄 사건 등을 심리할 때 피해자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성범죄는 주로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 증거가 부족하고 가·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중요한 논점이 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 판례가 평균적인 사람의 상식에서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황을 판단해 왔다면 최근 판례는 성인지 감수성에 입각해 피해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상식에서 피해자에게 처한 특별한 상황,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등 까지 함께 고려하는 취지로 변화하고 있다.

 그간 성범죄 피해자 2차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피해자가 피해 발생 여지, 원인 제공을 한다는 ‘피해자 유발론’, 다른 범죄에 비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특히 요구돼 왔던 ‘피해자다움’이다. 예를 들어 ‘누가 따라가래’, ‘옷차림이 그러니까 성폭행을 당하지’라는 따가운 주변 시선들과 ‘성폭력은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라며 피해자답기를 강요하는 근거 없는 기준이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 버렸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거론된 최초 판례로 지난해 4월 모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성추행·희롱했다는 사유로 해임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제기한 행정소송의 고등법원 승소 판결을 뒤집고 대법원에서는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라는 기준을 제시하며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조)

 이렇듯 점차 성폭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변화하는 것은 기존 가해자 중심 문화로부터 탈피하고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며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비단 성범죄 판결에서만 요구되는 개념은 아니다. 우리는 직장·학교 등 일상 속에서 개인이나 구성원들 간 주고받는 말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성범죄 성립 여부와 상관 없이 타인이 원치 않는 칭찬, 친근감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신체접촉·언행, 성차별적 발언들로 상대의 성적 수치심, 굴욕감 등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가 성희롱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상대방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우려해 묵인하는 것이 관용이나 배려가 될 수 없고 때로는 단호한 거절이 더 큰 문제 행동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고착돼 온 성별 고정관념,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속 획일화된 여성과 남성의 역할 및 이미지에 대해 분별력 있게 바라 볼 수 있는 시각과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고정된 생각에서 탈피해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