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꼭 69주년이 되는 주말에 남·북·미의 최고지도자 3인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 수차례의 군사적 충돌 위기가 있었고 2017년 하반기는 전쟁 재발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한반도를 둘러싼 검은 먹구름은 위태위태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져 한반도의 검은 먹구름은 걷히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 줬다. 특히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서 채택이 무산된 뒤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가 중단되는 곡절을 겪긴 했으나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인내심을 갖고 계속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 이번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전후로 모종의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그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이런 기대와 가능성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남북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역사적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북·미 정상은 배석자 없이 거의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그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두 사람이 상대를 초청했다는 등의 내용 정도의 이상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동안 비핵화 협상 결과와 정치적·외교적 상황을 근거로 추론해 보면 한국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기 위한 ‘3차 평화선언(종전선언)’에 대한 것과 북의 영변 핵시설 가동 전면 중단과 미국의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 일부를 면제하는데 양해하고 우리 측의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청신호가 있어야 한다는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이번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 판문점 방문에서 ‘종전선언’이 나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이미 13년 전 하노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우리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 사이에 비핵화를 위해 "남·북·미 3자 정상이 종전을 공식 선언하고 평화조약을 맺자"는 논의가 있었기에 노무현 정부 시절 종전-평화조약의 2단계 구상은 충분히 논의됐고, 작년 1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3자 종전선언이 재추진됐던 배경이 있지 않았던가. 더구나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4·20 시정연설에서 밝힌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근본 방도에 부합되는 바다. 이런 기대는 다시 미뤄졌다. 다만 북·미 정상 간의 대화에서 미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가까운 시일에 새로운 해결 셈법의 하나로 이뤄진다면 좋겠다는 상호일치가 얼마만큼은 있지 않았을까. 종전선언은 미국으로서도 대북 제재 카드를 계속 쥐고 있으므로 손해볼 게 없고, 중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정책 3원칙에도 부합되며 평화체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돼 나쁘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의 여정에 긍정적"이라고 이번 역사적 만남을 평했다. 로마 교황도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결론적으로 적대적인 한반도 과거의 어둠을 미래의 밝음으로 바꾸는 데 일대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앞서 분명히 해둬야 할 바가 있다. 작금의 모든 문제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있겠으나 북쪽이 그동안 여러 차례 약속을 위반하고 핵·미사일을 개발해 신뢰를 잃은 점과 미국이 그동안 보인 미덥지 않은 태도에서 볼 때 또다시 서로의 일시적 필요성에 따라 회담하고 접촉을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북·미 정상이 과거의 적대적인 자세보다 대화의 상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환영해야 한다. 박수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은 우리의 염원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곤란하다. 일찍이 역사는 교훈을 주고 있다. 평화 무드는 회담에서 약속되지만 반드시 실현되는 건 아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질 때 이뤄진다는 엄연한 진리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