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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30대 유학시절이었습니다. 한 번은 ‘중국혁명사’ 과목을 들었는데, 중국인 교수는 한 학기 내내 타이완에서 국부로 존경받는 손문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일관했습니다.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해 알고 싶었던 저로서는 실망이 컸죠. 그러나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을 알고는 조금은 이해도 됐습니다. 그가 타이완에서 손문을 줄기차게 비판한 탓에 결국 추방됐고, 갈 곳 없던 그를 미국 대학에서 받아줬던 겁니다. 중간고사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시험에 대해 묻자, 교수는 책을 읽어보고 수업을 잘 들었으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중간고사날이었습니다. 답안지를 나눠준 뒤, 교수는 칠판에 딱 한 문제만 썼습니다.

 "중국은 전승국이고 일본은 패전국이다. 수십 년 지난 지금, 전승국인 중국은 후진국이 됐고, 패전국인 일본은 선진국이 됐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가?"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에서도 강의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문제였거든요. 그래도 저는 인접국가의 역사라 무언가라도 쓸 게 있었지만 미국 학생들은 전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삼국지의 내용을 들먹여가며 나름대로 답안을 작성하고 강의실을 나오면서 미국 학생들의 답안지를 힐끗 보니까 대부분이 백지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우리가 시험에 대해 묻자, 교수는 한 단어만 썼으면 ‘백점’이라며 그 단어를 칠판에 큰 글씨로 썼습니다.

 ‘리더십!’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좋지 못한 리더를 만나 이렇게 어렵게 살게 됐고, 일본은 좋은 리더를 만나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그 말이 6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제 뇌리 속에 남아 있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한(漢)족은 기다릴 줄 안다. 비록 지금까지는 잘못된 리더가 이끌어왔지만, 언젠가는 좋은 리더가 나와 중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어낼 것이다."

 대단한 믿음이었습니다. 강의실을 나온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 두고 ‘더 배우겠다’며 떠난 유학이었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믿음’이나 ‘리더에 대한 믿음’ 없이 그냥 살았던 겁니다. 그저 ‘나’만 생각했던 겁니다. ‘나의 미래’만 헤아렸던 겁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위상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타인’과 ‘리더’, 또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희망적인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지를 그때 배웠습니다.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 ‘나’의 행동이 결정됩니다. 말썽을 피우는 자녀라고 해도 자녀에 대한 희망적인 믿음이 크면 클수록 자녀를 꾸중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지지하는 행위가 나옵니다. 그때 자녀들도 조금은 더 수월하게 그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에 나오는 예화에서도 그런 희망적인 믿음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칭찬이라고 하면 이런 시가 떠오른다. ‘누가 칭찬을 하든 / 누가 험담을 하든 /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 그려놓은 내 그림을 보고 / ‘이야!’하고 한마디로 감탄해주기만 해도 /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머니의 ‘이야!’라는 지지와 격려가 어린 호시노 토미히로를 절망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는 목밑 부분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입에 붓을 물고 글과 그림을 그리는 유명한 구필화가가 됐습니다."

 희망적인 절대적 믿음은 지지와 격려로 나타나지만, 부정적인 절대적 믿음은 비난과 다툼으로 얼룩집니다. 어떤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를 곰곰이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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