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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 간 천재로 평가받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날카롭게 통찰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부조리한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 「변신」에서는 벌레로 변해 버린 남성이 있는가 하면 「성」에서는 자신을 부른 곳에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토지측량사 K를 그렸다.

 작가는 이치에 맞지 않고 엉뚱한 상황에 빠져들어 뜻밖의 결론으로 향하는 인물을 통해 세계의 불균형과 인간 생애의 한계를 고민하게 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심판’은 카프카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영화로 천재 감독 오손 웰즈의 1962년 작품이다. 두 천재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를 창출했는지 영화를 통해 만나 보자.

 생일 아침에 눈을 뜬 K는 뜻밖의 상황이 당황스럽다. 정확히 경찰이라고는 밝히지 않은 의문의 사내들에게서 형사사건에 기소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 K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않은 채 사내들은 가택수사를 벌인다. 황당하게도 K의 근무시간을 배려한 사법기관 덕분에 그는 퇴근 후 알 수 없는 죄명으로 심문을 당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달은 K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 변호사, 판사,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무죄를 믿어 주지 않았다. 죄명은 알 수 없었지만 기소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유죄를 확신한 사람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죗값을 가볍게 하는 데 집중하라는 조언을 건넨다.

 K는 유죄라는 타이틀을 자신에게 부여한 거대한 법 앞에서 정의와 구원을 바라며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오히려 허점투성이인 부조리한 상황만을 마주하게 된다. 높다란 문 뒤에 서 있는 법은 감히 평범한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높은 지위를 확보했지만 그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법은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해 누구도 물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상황에 절망한 K는 한계를 깨닫고 결국 사형 집행을 받아들인다.

 오손 웰즈가 재해석한 영화 ‘심판’은 원작이 전하는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청각적 체험을 강렬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K가 처한 상황과 그의 심리상태는 대사로 전달되기 전에 정교한 미장센으로 표현된다. 생일 아침에 맞이하는 반갑지 않은 상황과 죄명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K의 방을 좁고 천장이 낮은 형태로 구성했다. 이를 통해 그가 느끼는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했다. 시스템에 좌우되는 삶의 모습은 K가 일하는 근무환경에서 나타난다. 수천 명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하는 장면과 공간을 가득 채운 요란한 타이핑 소리는 K가 속한 전체주의 사회를 소름 끼치게 표현하고 있다.

 양차 대전 이후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녹여 낸 영화 ‘심판’은 주인공의 사형 집행 장면에서 시대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죄 없는 혹은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사형대에 선 K는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처형된다. 한 사람을 사형하는 방식으로는 지나친 감이 있으나 이는 2차 대전의 무수한 희생과 원폭으로 인한 전쟁 종식을 상징적으로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자연스레 시대상이 녹아 있는 영화 ‘심판’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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