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시회는 약자들의 권리 주장의 창구로 집회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강자나 기관, 정부 등에서 소수의 의견을 잘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에는 국민신문고, 각 지자체에나 기초단체에도 일명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차원에서 신문고들이 있다. 하지만 이 신문고들은 이들 기관의 의도와는 달리 철저하게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리들은 이를 대변하는 또 다른 조직이나 언론에서 용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거리로 몰려 나온다. 당연하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기관들은 그 소리를 귀찮아하고, 적당히 넘기려 해서다. 그래서 집회가 늘어나고, 또 그 수가 증가하면서 과격해지고, 무분별해지고 있다. 이렇게 집회가 난립하다 보니 그 정당성 역시 조금씩 떨어지는 형국이다.

 이 부분은 필자의 개인적 생각일지 모르나 한 번쯤은 다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최근에 인천에서 한 단체가 초등학교 앞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경찰에 집회신고를 했기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을 한 번쯤은 생각했더라면 아마 자신들의 행동에 조금은 미안했을 것이다. 또 지난 3일에는 조리실무원과 돌봄전담사를 포함한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전국적으로 파업을 했다. 인천도 많은 인원이 서울로 올라가 참여했다.

현재 적수((붉은 수돗물)피해로 급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서구지역 학교들도 참가했다. 물론 이런 사례들의 권리와 주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붉은 수돗물 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은 "한 달 내내 부실한 급식을 했는데 파업으로 다시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호소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다.

 약자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회, 당연한 권리이자 관철의 창구임은 분명하다. 이런 권리와 주장에도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역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식이라 생각한다. 내 권리를 찾고자 하는 행동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면 이것은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고 본다. 보다 성숙한 집회는 그 집회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고, 그 집회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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