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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자 인천문인협회 회원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떠날 때 뒷모습을 바라보면 어떤 조우를 기대하기보다는 기약 없는 이별이 허전하다. 먼 훗날 뜻밖에 다시 만나는 해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떠난다고 인사를 하러 오셨다. 아파트 상가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경비원 아저씨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시간에 들렀다가 가시는 뒷모습이 쓸쓸한데 날은 어둑어둑 저문다. 배웅하러 나갔더니 저녁 까치가 회화나무에 앉아 깍깍거린다. 기약 없는 작별을 하면서 빈말 같은 여운으로 담에 오시면 꼭 들르시라고 인사했더니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고 가신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해고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다. 일을 그만두는 순간 그 말을 절감하는 분들이야말로 연세 드신 경비원이 아닐까 싶다. 위로랍시고 더 좋은 자리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고령으로 아파트를 전전하며 궂은일을 하는 그들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자리 차례가 오겠는가. 경비원들의 고용 계약은 용역업체와 체결이 돼 있다. 아파트는 용역업체와 보통 2년씩 계약을 해주지만 용역업체는 경비원 아저씨들과 1년씩 계약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편법을 쓴다. 고용 계약서를 3개월에 한 번씩 받으면서 근무태도를 봐서 3개월 안에 꼬투리가 잡히면 사람을 바꾼다. 1년을 채우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 1년 안에 나가게 만드는 수법을 쓰는데, 이걸 부당해고라 할 수도 없어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떠난다.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식(食)이 우선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경비 아저씨들은 유난히 밥벌이가 힘들어 보인다. 연세 드신 분들은 밥벌이 속에 약값까지 포함돼 있어서 사정이 더 딱해 보인다. 경비원 한 명을 채용한다고 구인 광고를 내면 스무 명쯤 몰려오니 소문엔 뒷돈을 줘야 취직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그 전에 우리 아파트에 오셔서 계시던 분들은 보통 4∼5년씩 계셨고 오래 계신 분들은 10년을 넘게 계시다 떠나셨다. 눈만 뜨면 만나는 분들이니 미더워서 이런저런 부탁을 하곤 했다. 스스럼없이 과일을 나눠 먹는 이웃처럼 정이 들어 든든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최저 임금을 주라는 정부의 압력이 내려오자 경비 용역업체는 월급을 줄이기 위해 휴식 시간을 많이 줬다. 경비원들은 철새처럼 휴식시간 덜 빼는 곳으로 전전하기 시작했다. 1년만 근무했다 쉬면 실업급여를 탈 수 있다면서 떠났다.

 우리 아파트에 감사라는 감투를 쓰고 갑질하는 여자가 있었다. 자기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경비원들에게 간섭을 했다. 택배를 찾으러 갔다가 휴식 시간에 반바지 차림으로 쉬고 있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팬티 바람이라며 트집을 잡아 해고시켰다. 새벽 두 시에 경비원 아저씨를 재활용장으로 데리고 가서 지저분하다고 지적질을 하기도 했다. 자존심 상한 경비원은 다음 날 사표를 쓰고 떠났다. 백 번 잘하다 한 번 거슬리면 가차 없이 내보내는 그녀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도 하고 밥도 사줘 봤다. 한데 사람의 천성은 바뀌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갑질도 자꾸 하면 능숙해지고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녀로 인해 우리 아파트 경비원 중 1년을 넘긴 분이 한 분도 없다. 경비 용역업체는 좋아하는 눈치다. 구인광고 내면 몰려오고 몇 개월만 적당히 근무시키니 퇴직금을 안 줘도 된다. 결국 이 여자가 용역업체를 은근히 도와준 셈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이번엔 그 여자 편에 줄을 섰던 경비원들을 관리소장이 몽땅 해고시켰다. 몇 년간 그 짓 하던 여자는 제 꼬리를 밟고 비틀거리다 결국 집을 팔고 떠났다. 자기도 그들 무리에 속아서 못된 짓 한걸 반성하는 의미일까. 어쨌든 희생당하는 분들은 경비원들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떠나가는 아저씨들이 가엾을 뿐이다. 저무는 들녘에 고개 숙인 수수를 연상시키는 고령의 경비원 아저씨들이 떠날 때마다 나는 비애를 느낀다. 젊은 시절 잘나가지 않았던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분들도 한 가닥 했던 좋은 시절 있었건만 지금은 아파트를 전전하며 밥벌이를 해야만 하는 처지다.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 말년에 경비원을 하시다 돌아가신 삼촌이 생각난다. 추운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고 떠나던 그 분들의 어깨에 따뜻한 봄볕이 내려앉기를 기도한다.

▶ 필자 : 문학바탕에서 시(2015년), 수필(2017년) 등단 / 저서; 제비꽃 같은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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