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긴 마루’라는 뜻을 가진 영종(永宗)은 이제 국제공항뿐만 아니라 자유경제특구인 국제도시로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지명의 역사도 돌고 도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인지, ‘제비가 날던 섬’인 자연도(紫燕島)라는 명칭은 이제 영종도로 바뀌어 세계의 비행기가 이곳에서 날갯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종도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거주했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한강과 예성강이 합류해 황해로 들어가는 합수점(合水點)에 있어 풍부한 어패류가 생식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영종도지역이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이 작은 섬을 자연도라 칭했고 또 사신을 영접하는 객관이 설치돼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하여 서해안의 일개 작은 섬인 자연도에 송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던 경원정이 설립된 것인가. 이 길목은 개경으로 가는, 당시로서는 몇 개밖에 없던 사신로였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인천의 능허대가 바다를 통한 한국 최초의 중국 교통로였던 것과 같이 이 일대가 해상교통로의 주요 거점이었다.

 조선시대 경기도의 해방(海防)은 ‘남양’과 ‘교동’에서 책임을 지고 ‘왜구’를 근해에서 격퇴하는데 있었다.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일차 저지선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방어체제는 ‘강화도’ 중심으로 변환됐는데 이때 영종은 교동과 함께 강화도의 좌우익이 되면서 군사 요충지로 부각됐다. 강화도 방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안산의 초지진(草芝鎭)과 인천의 제물진(濟物鎭)이 강화도로 이설(移設)됐고, 유사시 강화도로의 도강을 위해 인천 월미도에는 월미행궁(行宮)이 건립됐다. 이것은 갑곶진을 통과할 수 없게 될 경우 영종도를 통해 강화도에 입수하려는 계획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조선 근해에는 이양선 또는 황당선이라 불리는 서양 선박의 출현이 시작됐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조선 연해에 출몰하는 서양선박의 수가 급증했다. 이의 잦은 출몰은 조선 정부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영종도 백운산 정상에 조망대를 설치하고 외국 선박이 나타나면 봉화를 올리거나 배를 이용해 군부대에 연락해 황당선을 감시하게 한 것도 이러한 실정에 의한 것이었다. 인천만 일대의 항로는 모두 영종진을 거쳐 강화도로 진입하게 돼 있었기 때문에 방위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됐고 포군 역시 증강 배치됐으며 군량도 넉넉히 비축된 요새 중의 요새가 됐다.

 1866년 병인양요와 영종진 민가 약탈, 1868년 오페르트의 도굴 및 영종진 습격, 1871년 신미양요 등으로 조선 정부는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는 등 외세의 접근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영종진은 이제 서양 함선의 한강 하류 접근을 봉쇄하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875년 일본에 의해 야기된 영종진 피격사건은 일방적인 포격전이었다. 운요호는 근대 전함으로 상당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영종진이 무너졌고, 이들은 영종도에 상륙해 방화와 살육을 자행했다. 전리품은 일본군 사망자 1명과 함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보내졌고, 영종진 함락 이후 최초의 근대 조약 이자 불평등조약인 조일수호조약이 체결됐다.

 영종도의 지난 역사는 영욕이 교체했다. 현재 지정과 비지정 문화재를 포함해 10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흔적들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더욱이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지형의 변화와 주민의 급속한 유입과 이동으로 원주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마저도 유실되거나 인멸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태이다. 영종 지역은 해상교류 거점으로, 국방상 요충지로 그 역사성이 그대로 보존돼 그 바탕 위에 국제적 관문도시로서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인천의 미래 자산이 됐다. 한반도 남북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영종 지역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는 자료 발굴과 축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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