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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최근 육군 동기생 사이에서 발생한 ‘인분 가혹행위’가 알려져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지난 4월 초 A일병은 같은 부대 소속 동기생인 B일병과 함께 외박을 나갔다가 모텔에서 B일병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군 수사당국은 B일병으로부터 "A일병이 인분을 얼굴에 바르거나 입에 넣도록 강요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피해자는 4월 초부터 영내 생활관 등에서 반복적으로 가혹행위를 당했는데 소속 부대 중대장은 사건을 알고도 나흘이 지나서야 조치했고, 그나마도 피해자를 군 부적응자로 취급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런 잔학한 일이 군부대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니 참 실망스럽고 격분할 일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수많은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근심과 걱정을 하겠는가.

 국방부는 오래 전부터 병사들의 인권·인격 존중, ‘삶의 질’ 향상 등에 중점을 둔 ‘병영문화혁신’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숨진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1·3·6개월 동기제, 길게는 1년 단위 동기제까지 일선 부대에 도입했고, 지난 2월부터는 병사들의 ‘평일 일과 후 외출’제도가 전면 시행에 돌입했으며, 모든 군부대가 시범 운영 중인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제도 역시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군무이탈 사건은 2013년 643건에서 2015년 292건, 2017년 150건, 2018년 122건 등으로 지난 5년 사이 크게 감소세를 보였고, 병사 자살사고 역시 2013년 45건에서 2015년 22건, 2017년 17건, 2018년 21건 등으로 하향추세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인분 가혹행위’가 발생하는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데, 사실 그 말은 40~50년 전에도 있었다. 도대체 군대가 얼마나 더 좋아져야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사라지게 될까.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고문관’이라고 지목하며 괴롭히던 악습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흔히 "한국사회는 거대한 병영사회다"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군사정권에 의한 지배가 행해졌고, 국민 중 대다수의 남성이 군 복무를 경험하다 보니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이 마치 군대처럼 획일적으로 운영되고 국민들은 그러한 통제에 길들여지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사실 옛날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군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부모와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깨닫게 되고, 책임감도 길러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군에서 배울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못된 것만 배우고 나온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군에서 거짓말을 배우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버릇을 배우는 등 인성이 나빠지게 된 사례도 많다. 신참 시절 고참으로부터 행패를 당했던 병사가 자신이 고참이 됐을 때 또 신참들에게 행패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의 대다수 남성들이 경험하는 군 생활은 전체 국민의 의식과 행태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갑질’도 그 기원이 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못된 점을 배운 것이라고도 한다). 자기보다 계급이 낮거나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언행을 군에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국방부와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군부대 내에서 더 이상 가혹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하고, ‘인권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또한, 병사들의 인권이 제대로 존중될 수 있도록 군 검찰과 군사법원제도도 대폭 개혁해야 하고, 현재 추진 중인 헌병제도의 개혁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오는 16일부터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될 예정인데, 군부대 내 괴롭힘도 근절되도록 조속히 관련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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