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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베트남 이주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의 무차별 폭행이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라고 합니다.

 이주여성들에 대한 폭력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데이트 폭력, 이혼커플, 황혼커플 등의 용어들이 낯설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가 메말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사랑’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도 기술(art)처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느 누구로부터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너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배우지 못하고 컸습니다. 그런 탓에 본능적으로 느끼는 사랑의 욕망을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경험’만으로 사랑의 속성을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한 대로 사랑을 해온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고 가까운 사이가 된 후부터는 자신이 경험하고 규정한 사랑의 방식만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요?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고 만났지만 늘 절망만이 남는 사랑을 반복하고, 그래서 후회할 때는 이미 그 사람이 떠난 뒤는 아닐까요? 그러니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이제라도 사랑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정호승 시인은 「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바닷가 모래밭에서 가끔 찾아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린 지 벌써 3년이 됐습니다. 3년 전 봄비가 내리던 날, 아침 일찍 엄마와 아빠가 집을 나갔고, 저녁이 돼서야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오늘 법원에 가서 법적으로 헤어졌단다. 이제 아빠하고 살아라."

 소년은 모래밭에 선을 그었습니다. 파도가 그 선을 없애면 다시 그렸습니다. 보름달이 뜨자 보름달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동그라미를 그리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직선만 그렸습니다. 그때 소년의 뒤에서 아빠가 말합니다.

 "얘야,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단다."

 사랑도 같습니다. 사랑하던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사랑의 원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일 뿐입니다. 산통을 겪으면서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엄마는 그 자식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함께 한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속성은 마치 시계추와도 같습니다. 추의 왼쪽 끝에서는 환희와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편 끝으로 추가 옮겨지면 미움과 원망을 느끼곤 합니다. 이 모든 느낌이 바로 ‘사랑’의 얼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의 절반만을, 즉 환희와 기쁨만이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미움과 원망이 들 때를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 결과, 사람에 따라서는 폭력이나 폭언으로 이별과 불행을 자초하곤 합니다.

 서로의 ‘다름’이 부딪힐 때 미움과 원망이 듭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연인이 됐다고 해서 또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책 「나는 당신입니다」에서 소설가 박범신의 산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지 어언 30여 년. 이 긴 세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끝에 얻은 확실한 결론의 하나는 ‘우리 부부는 대부분 서로 안 맞는다는 것’이다. (…) 이렇게 서로 맞지 않으면서 지난 30여 년을 도대체 어떻게 함께 살아왔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많다. (…) 함께 사는 일이란 마치 서로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둘씩 찾아내고 쌓아가는 일인 것 같다."

 참으로 멋진 지혜입니다. 내 방식만을 고집하고 요구하면 늘 갈등만 깊어질 겁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서로 닮아갑니다. 그래야 보름달을 그리고 싶었던 소년이 깨달은 것처럼 처음 시작했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드디어 아름다운 사랑의 동그라미를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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