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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호칭한다. 지리적으로는 손짓하면 닿을 거리지만 두 나라 간에 서린 한(恨)은 깊기만 하다. 과거 한국의 역사에 수많은 노략질, 침략, 심지어 식민지배의 역사는 뼈아픈 역사에 대한 상처의 일부를 증거한다. 가해자는 쉽게 잊을지 몰라도 피해자는 가슴에 간직하는 상처가 남다르다. 군 위안부, 강제징용, 국토의 유린과 수탈, 양민학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자신들이 2차 대전의 피해국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와 악행에 대해서는 반성은커녕 함구하고 있다. 당연히 주변 피해 국가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안면몰수하고 현 일본 정부는 전쟁 후 가장 민족주의의 정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극우세력의 준동은 대낮에도 도쿄 한가운데서 피해 국민에 대해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혐한 사상이 극치에 이른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독일 정부와 같은 참회와 반성,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그들은 조금도 이해할 리 없다.

 과거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들의 문화를 꽃피웠듯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 할 때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따져가며 일본에 동조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자신은 친일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이 필요했고,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로 일본의 의도를 용인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세 나라 간의 전쟁인데도 피 흘리는 곳은 조선 땅이었다. 애꿎은 조선인만 희생되고 국토는 폐허로 변했다. 러일전쟁을 취재했던 미국 종군기자 잭 런던은 당시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정의 관리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백성들은 낮에는 산속에 숨고 밤이면 내려와 필요한 것을 챙겨 다시 산으로 숨는다며 이 전쟁의 부조리함을 지적했다.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일본이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조선은 일본의 생명수 역할을 해왔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의 국고가 바닥났을 때,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받아냈다. 당시 청나라의 1년 예산의 2.7배에 해당되는 금액과 함께 랴오둥반도까지 넘겨받았으니 단단히 이득을 챙긴 장사였다. 그걸로 일본은 비어 있는 곳간을 채우고 러일전쟁에 필요한 군함을 구축하는 등 군국주의의 기틀을 다졌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갑자기 신흥 부자국가로 도약했다. 전쟁에 참가한 영국 등에 군인들의 내복과 필요한 군수물자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었고, 한국에서 수탈한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무조건 항복으로 패망한 직후 한국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이 전쟁 물자를 공급하면서 또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일본이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근면성과 탄탄한 기초학문이 있었지만 한국 때문에 그야말로 한몫 단단히 잡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일본은 양국 관계에서 한 치 앞을 나가지 못하고 갈등만 조장하고 있다.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본 왕실의 뿌리는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근대사에서 한국을 희생 삼아 오늘의 그들이 번영한다는 점도 사실이다. 아직도 식민지배의 미개한 나라로 보고 자신들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구태의연한 시야를 벗어나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다운 면모가 어디에 있는가? 치졸한 복수로 이웃국가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려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라. 일본 정치인들은 부디 자신들을 성찰하며 자국 내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일본은 더 이상 약자의 눈에 피와 눈물을 내서는 안 된다. 악질적인 골목대장보다는 보다 선한 국가로 재탄생하라. 이는 일본에 대한 대한국민의 마지막 통한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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