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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부평구 부평3동에 위치한 인천 희망세상 어린이집 전경.
아동보육의 질은 어느 보육기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부에서 운영해 신뢰도가 높은 국공립어린이집은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일반 영·유아 등의 우선순위를 매겨 입소가 결정된다. 지역 맘카페에서는 국공립어린이집에 당첨되는 것을 로또에 비유하기도 한다. 국공립어린이집만큼이나 공공성을 내세우는 직장어린이집은 공무원 및 근로자 500명 이상 사업장 직원의 자녀만 입학할 수 있다. 직장어린이집과 국공립어린이집 입학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인천지역 내 6만6천732명(83%)의 아동들은 민간·가정어린이집에 입학한다. 맘에 드는 어린이집을 찾아 입학시켜도 학부모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아동학대 등 부정적인 소식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럼에도 집에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 가정은 뾰족한 수가 없다.

 인천시 부평구에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 부모와 교사들이 힘을 합쳐 조합을 결성해 공동육아 터전을 운영하는 ‘인천좋은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희망세상 어린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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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나들이 시간에 인근 공원에 나가 곤충을 관찰하고 있다.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1996년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활동가들이 공동육아와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자녀 양육을 위한 시설로 처음 출발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로 인해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부모들이 서로의 아이를 함께 키우며 품앗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 중 몇몇 활동가가 보육교사 자격증을 획득해 1998년 정식 인가를 받았다. 정식 개원한 것은 2000년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모아 부평3동에 영구 터전을 세운 뒤다.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보호자 15인 이상이 조합을 결성해 설치·운영하는 부모협동어린이집이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모협동어린이집은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방식인 민간어린이집과 달리 조합원으로 이뤄진 총회와 이사회가 중심이 돼 운영된다. 총회는 조합원으로 구성하며, 투표를 통해 선출된 이사장이 의장이 된다. 어린이집 일과와 터전 환경 전반에 관한 논의는 운영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조합을 좀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교사회, 교육·재정·시설 소위원회 또는 각 반별 방모임 등 여러 종류의 회의를 개최한다.

 협동조합은 영리적 목적이 아닌 공동보육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을 고민하다 생겨난 만큼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부모협동어린이집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한다.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발로 직접 뛰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린이집 청소 등을 가정마다 의무적으로 진행하며, 한 해에 3번가량 일일교사로 활동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 달에 한 번 방모임에 참석해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교사와 부모가 의견을 나눈다. 이 외에도 조합원으로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부모 교육을 받거나 틈틈이 어린이집에 필요한 일손을 거든다.

▲ 조합원들이 어린이집을 청소하고 있다.
 이성윤(45)인천좋은공사협 이사장은 "어린이집 운영에 부모가 직접 참여하면서 부모가 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주변 관계를 확장하고 성장이 바탕이 돼야 좋은 보육의 담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어린이집 운영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보육서비스의 질, 보육교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2015년 이후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학부모 전원 동의 하에 미설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집 대문이 언제나 개방돼 있어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만들어 낸 대목이다.

 보육교사가 필요에 따라 연월차를 사용할 때 학부모가 일일교사로 투입되는 운영 방침도 눈에 띈다. 교사는 휴일 동안 재충전을 하고 와 긍정적인 에너지로 보육에 더 집중하고, 일일교사로 투입된 학부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체감할 수 있다. 이는 곧 만족스러운 보육의 질로 이어진다.

 희망세상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최소 4년 이상의 경력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교사 1명당 아동 수도 5세 13명, 6~7세 16명이다. 이는 법정 기준인 5세 15명, 6~7세 20명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과후학교 수업인 하제누리다. 어린이집 졸업생이 생기며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조합원 출신이었던 학부모가 중심이 돼 방과후교실을 만들었다. 특히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이 직접 여행 코스와 숙소를 정해 함께 자전거를 연습하고 여행을 떠나는 ‘자전거 기행’은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단순한 인지학습이 아닌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주체가 돼 자신들의 욕구가 반영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아무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교사들의 설명이다.

 이성윤 이사장은 "아이들이 원치 않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 억지로 학원 등에 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많았고,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 초등 방과후학교가 생겨났다"며 "공동 보육을 하다 보니 조합을 넘어서 마을단위로 보육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뛰놀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직접 그런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발상이었다"고 말했다.

▲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때 시작한 사업이 2016년 부평구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온 마을이 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들’이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 통학로 중 위험한 곳과 쓰레기가 많은 곳을 조사하고 개선하는 사업이었다. 하제누리 아이들은 지난해 동네 곳곳을 돌며 동네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지저분한 곳엔 힘을 합쳐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했다. 이를 계기로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로를 위해 신촌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옐로카펫이 설치됐다.

 이 밖에도 조합원 아빠들을 중심으로 족구 모임을 갖고 아이들과 캠프를 가는 동아리 ‘통통 족구단’, 공동 텃밭을 운영하는 동아리 ‘밭두렁’ 등 마을 동아리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희망세상 어린이집은 조합원 가정의 소득 수준을 나눠 조합비를 달리 받는다. 상호 동의 하에 여유로운 사람이 조금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많이 참여해서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이다. 투명한 운용을 보장하고 미래 투자에 쓰이는 돈이라는 점에서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어린이집 운영과 지원 기준은 민간어린이집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동 연령에 맞는 적절한 수의 교사 확보, 간식과 식사의 질 향상, 필요한 교재·교구 마련 등 일상 운영경비는 부모들이 매월 내는 조합비로 충당해야만 한다. 인건비와 물가가 상승하며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월 30만 원을 넘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저출산의 타격도 받아 정원 77명 중 현원은 40명에 그쳤다. 실제 지역 내 부모협동어린이집은 총 5개뿐으로 지난해 경영난 등의 이유로 1곳이 폐원했다.

 조합원들이 조금 더 부담을 지더라도 교사들의 임금 수준을 적정하게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부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세상 어린이집 설립 취지가 비영리적인 목적이었던 만큼 부모 부담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구조는 항상 숙제로 느껴진다.

 이성윤 이사장은 "조합원과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사당 아이 비율을 낮춰야만 가능하다. 그 이후 공동 보육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체계 등을 구축하는 것은 서로의 뜻만 같다면 어렵지 않은 문제다. 좀 더 적극적이고 공동 보육에 특화된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고 나면 그 안에서 확장할 수 있는 지역 연계가 가능할 것 같은데, 기관 운영을 위해 뺏기는 에너지가 많아 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커 가면서 부모들의 고민도 그때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은 어린이집이 있고 초등 방과후교실이 있지만 후에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여기서 맺어진 관계가 본인들 삶에 있어서 의지가 되는 관계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사진=<인천 희망세상 어린이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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