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커피로스터즈’, ‘우리의 20세기’, ‘행궁맨션’, ‘운멜로’, ‘비원’, ‘초안’….

 수원에 살면서 앞에 나열한 가게 이름이 낯설다면 ‘노땅’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일명 ‘행리단길’로 불리는 이곳 동네에 들어서 있는 이러한 가게들이 취향과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20∼30대 젊은층 소비자에게 ‘핫플레이스’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삼사십 년이 넘는 구옥(舊屋)이 즐비한 이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저마다 운치가 있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 가게에서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주인장의 멋’이 존재한다.

 손님들이 앉는 테이블부터 식기 및 스푼세트, 차(茶)와 음식까지 가게 구석구석에 주인의 개성이 물씬 배어 있다. 마치 소극장 무대에서 연출자가 관객에게 보이는 모든 소품을 세세하게 신경 쓰는 것처럼 허투루 가게 손님을 맞지 않겠다는 주인장의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전국 최대 규모의 점성촌으로 소개됐던 곳이었다.

 화서문 안쪽 길을 따라 ‘단군OO’, ‘천왕OO’, ‘태양OO’ 등 무당들이 저마다 모시는 신의 이름을 내건 간판들이 밀집해 있고 건물마다 나부끼는 붉은 깃발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300m 남짓한 골목 주위에 점집만 40여 개에 달했다. 당시 점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이 아니면 이곳을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 행궁동 차 없는 거리.
# 원도심 회복시킨 ‘생태교통축제’

 이랬던 동네가 어느 기념비적인 행사 개최를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당시 환경운동가 출신의 염태영 수원시장은 2013년 9월 팔달구 행궁동 일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한 달 동안 차 없는 거리로 살아보는 ‘생태교통축제’였다.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이 세워져 있는 탓에 각종 문화재보호구역 규제를 받는 행궁동은 주민들이 차량을 댈 데가 없어 골목마다 주차난이 심각했다.

 염 시장은 이를 도시재생으로 풀 수 있다고 판단했다. 흔히 원도심 개발을 떠올릴 때 우선 생각하는 게 재개발이다.

 그는 달랐다. 기존의 건물을 부수지 않아도 원도심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첫 단추가 ‘생태교통축제’였다.

 유례없는 실험에 주민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동안 차량 통행은 물론 주·정차까지 금지한다는 말에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나이 어린 시장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하거나 자치단체장 공적 만들기용 행사로 폄훼하기도 했다.

▲ 행궁동 차 없는 거리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이러한 반발에 염 시장과 공직자들은 각 가구마다 주민을 방문해 일일이 설득한 끝에 동의를 얻어낸 뒤 본격 실험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시는 행궁동 일대 34만㎡를 대상으로 총 130억 원을 투입해 각종 도시기반 시설 정비에 나섰다.

 화서문로 540m, 신풍로 410m 등 생태교통 특화거리 950m 구간을 지나는 전선과 각종 통신선 등 공중선로도 지하에 매설했다. 상가 450여 곳의 간판과 벽면은 산뜻한 디자인으로 개선했다.

 화서문로, 신풍로 등 2개 특화거리는 기존 차도와 인도를 보행자가 편한 완만한 곡선형으로 바꾼 뒤 화강석으로 포장했다. 수원화성을 상징하는 소나무 가로수로 그늘도 만들었다.

 이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해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도전을 시작했다.

 무모한 행동으로 여겨졌던 실험은 성공으로 끝났다. ‘차 없는 마을’이라는 실천과제를 통해 문명의 발달로 찾아온 환경 파괴를 극복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당당히 보여줬다.

 지자체의 과감한 투자와 주민들의 동참으로 한 달 동안 행궁동을 방문한 내외국인만 무려 100만 명을 넘었다.

 현재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및 해외기관 등 268곳에서 1만1천300여 명이 행궁동을 비롯해 수원시 도시재생사업 지역을 찾아 벤치마킹했다.

 만일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기존 문법대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면 이를 완료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발생했을까. 재개발 조합 구성부터 시행사 선정, 토지·건물 보상, 철거 및 착공까지 4∼5년이 걸린다고 봤을 때 소요되는 비용만 수천억 원가량이 든다.

 하지만 행궁동 도시재생은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비용으로 원도심을 회복시킨 셈이다.

▲ 한옥형 상가 ‘장안사랑채’.
#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화성행궁 복원 프로젝트’

 이와 맞물려 시는 ‘화성행궁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종의 행궁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확장하는 것이다.

 사적 제478호로 정조 13년인 1789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된 화성행궁은 총 567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에 설치된 행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사라졌으나 1980년대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복원운동을 벌였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을 실시해 482칸을 복원한 뒤 2003년 10월 일반에 공개됐다. 2003년부터 2021년까진 우화관, 별주, 장춘각을 발굴하는 2단계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시는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 관광객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 화성 성곽 안에 한옥 건축 시 일정한 비용을 지원해주는 정책을 쓰면서 낡은 주택을 한옥으로 점진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공공건물을 지을 때도 한옥 형태를 살리고 있다. 시는 2018년 4월 팔달구 정자로 887에 전통한옥 가로형상가(스트리트몰)인 ‘장안사랑채’ 문을 열었다. 2개 동으로 이뤄져 있는 장안사랑채는 총면적 229.06㎡로 A동에는 커피전문점이, B동에는 한복판매점, 관광기념품 판매점 등이 입점했다.

▲ <수원시미술관사업소 제공>
 앞서 시는 행궁동 일원에 수원전통문화관(2015년), 행궁아해꿈누리(2016년), 한옥기술전시관(2017년)을 잇따라 개관했다.

 이러한 한옥 지원책은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지역과 확연한 차별성을 부여해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기존 노후된 건물을 부순 땅에 요즘 조성하는 택지개발지구에 천편일률적으로 짓는 상가주택이 아닌 한옥이 들어오면서 그만이 지닌 매력을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도시재생과 문화재 복원, 한옥 활성화 정책 등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면서 공동화 현상을 보였던 행궁동에 젊은 층 인구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며 "이제는 주민들이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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