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경제의 대동맥은 ‘불 꺼지지 않는 수출공단’으로 연결돼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일등공신이자 지역경제의 심장인 부평·주안·남동국가산업단지는 그렇게 반세기 넘게 제자리를 지켜냈다.

 지난해 말 기준 이곳에 모여 있는 공장은 8천831개, 12만8천982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역 전체 제조업 생산의 42%, 고용의 53%를 차지한다. 인천의 굴뚝산업을 3개 산단이 도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3차 산업시대가 저물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지만 공장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 그 사이 시설은 노후화하고, 공장 영세화는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산단 가동률은 6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밀레니엄 세대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구시대적이고 비전이 없어 보이는 공장에 취업하기를 기피한다. 공장주들은 비를 피할 지붕만 있으면, 출하한 물건을 쌓아 놓을 창고만 있으면 됐던 영화롭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국가산단의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던 때다. 고성장 시대는 저물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빅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지식산업센터, 스마트 팩토리…. 공장주에게는 아득하기만 한 개념들을 수용할 때가 왔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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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노석 한얼팩토리업(주) 대표가 인천뷰티코스메틱센터(IBC)의 입주기업과 대표 브랜드들을 설명하고 있다.
# 단독생산공장 시대의 종말

 그동안 일감을 몰아줬던 대기업은 해외로 떠났고, 그마나 남은 일감은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 자생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저성장·불황 국면에서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한노석 한얼팩토리업㈜ 대표가 인천 최초로 기존 공장의 변화를 이끈 ‘시스템 협업공장’을 내놓은 이유다.

 한 대표는 "고성장·고수익 시대가 끝나고 저성장·저수익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중소기업은 지나친 경쟁보다 협업을 통해 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단독생산공장의 종말’을 선언한 한 대표는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산단 내 공장을 미래지향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가장 편리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청년들에게 ‘왜 공단의 중소 공장이 싫으냐’고 물어봤다"며 "낡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무엇보다 ‘미래가 없어 보인다’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다"고 했다. 이는 기존 제조업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 문제의 본질(구인·구직자 간 미스매칭)이라고 한 대표는 설명했다.

 공장은 50년 전 그대로지만 근로세대는 1980∼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청년세대로 바뀌었다. 이들이 보기에 단독공장은 문화, 복지, 휴식, 일의 가치를 향유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고 산업 변화에 대응이 더디다. 공장주 입장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융·복합과 협업이라는 혁신적 슬로건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 대표는 개별 공장주들에게는 시너지가 있는 테마별 협업공장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청년들에게는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회사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주안국가산업단지(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인천뷰티코스메틱센터(IBC)다.

# 시스템 협업공장 시대의 첫발

 2014년 한 대표는 변화와 혁신을 고민하는 남동산단 내 몇몇 경영자(CEO)를 만나 협업공장을 제안했다. 동종 업계의 CEO들은 함께 투자해 공장부지를 마련하고 그들이 원하는 복합적 기능을 갖춘 공장을 짓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송희 에스에이코스메틱 대표와 이준생 지코스텍 대표, 장동원 ㈜에스디코스메틱·스킴덤 대표, 김영훈 이딥스레버러토리 대표, 김정훈 에스티원㈜ 대표(아이비씨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오세웅 그린비코스메틱 대표 등 6명이 그 주인공이다.

 융합과 협업으로 새로운 경영환경을 시도하는 그들에게 인천시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13개 유관기관은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주안산단에서 충청도로 이전할 예정이었던 당시 땅 주인도 이들의 도전의식에 감명을 받아 공장부지가 될 땅을 시세보다 3.3㎡당 50만 원씩 깎아줬다. 6명은 인천뷰티코스메틱사업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는 국내 최초, 국내 최대 규모를 갖춘 화장품사업 협동조합의 탄생을 의미했다.

 이들은 IBC 건립에 450억 원을 현재까지 투자했다. 2016년 6월 완공된 IBC는 지하 1층∼지상 8층, 총면적 1만4천170㎡ 규모로 외관상 다른 지식산업센터와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내부 공간은 질적으로 달랐다. 분명히 6개 기업이 입주해 있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화장품회사로 변신한다. 맨 꼭대기 8층에는 6개 기업의 사무실과 공동연구실이 있고 나머지 제조·생산실, 창고, 회의실, 홍보·전시실, 식음료실, 주차장, 기계실 등의 50% 이상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 역부족이었던 제품 연구와 개발, 생산, 판매, 전시, 마케팅 등이 하나의 건물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다. 과당경쟁의 경계가 허물어지자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바뀌었다. 이곳을 찾는 국내외 바이어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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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세워진 인천뷰티코스메틱센터(IBC) 전경.
# 기능 융합은 곧 자생력

 인천뷰티코스메틱사업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장동원 ㈜에스디코스메틱 대표는 "2014년 5월 IBC건립추진협의회를 구성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드웨어 구축에 공을 많이 들였다"며 "이제는 새로운 형태로 구축된 뷰티클러스터를 해외시장 진출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해 소프트웨어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6개 사는 기초·색조·기능성·에스테틱 화장품을 비롯해 헤어제품, 이·미용기기까지 뷰티와 관련해 다루지 않는 게 없다. 고가의 장비와 원자재를 공동구매해 구매원가를 10% 이상 절감했고, 공동제조시설로 생산원가도 20% 이상 아꼈다.

 장 대표는 "원가 절감 외에도 IBC라는 하나의 회사를 통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제품 생산기업은 주문기업에 높은 신뢰의식을 줄 수 있었고, 자사 제품 생산기업은 바이어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근로환경의 변화로 직원들 간 대화의 시간이 많아졌고, 젊은 층의 취업률도 급상승했다"며 "이 일대에 공실이 없는 지식산업센터는 이곳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IBC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에서 6개 기업이 뭉친 결과 공동 화장품 브랜드 ‘뉴섬(NEWSOME)’ 개발에 성공했고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장 대표는 "‘사드’의 영향으로 업계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국내외 화장품 박람회·전시회장을 지속적으로 찾아다니며 IBC와 IBC의 제품을 알리고 있다"며 "남동산단에서 바이어를 맞을 때보다 IBC에서 고객을 맞을 때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 점을 체감한다"고 했다.

 건물에 기능을 늘려 융·복합하니까 각 회사와 IBC가 자생력을 갖게 됐고, 그 자생력은 IBC 제품의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뉴섬을 비롯해 지난해 6월 국제표준규격(CGMP)에 맞는 ISO 22716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놀라운 성과로 불린다"고 했다.

 그는 "시스템 협업공장 설립을 위한 공장의 기획·설계·시공, 협동조합 설립, 외부 지원기관과 협업 체결 등을 전 과정에서 한얼팩토리업㈜의 기술적·행정적 지원이 IBC를 이끌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노석 한얼팩토리업㈜ 대표는 "IBC에 이어 생활용품 제조·연구기업 10개 사를 묶은 두 번째 시스템 협업공장 ‘인천스마트생활용품센터’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곳에도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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