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였다. 한일 간 충돌이 심화되고,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에 균열이 생기자 북·중·러가 릴레이 도발로 그 틈새를 파고 들었다. 먼저 23일에는 중·러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합동 비행을 벌였다. 기가 막힌 건 당시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는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되지 않았다고 한다. 24일에는 중국이 국방백서를 통해 "한국의 사드배치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했다"고 비난했다. 정부가 ‘추가적인 사드배치와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굴욕적인 3불 정책까지 내걸며 봉합한 카드를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다니 말문이 막힌다.

25일에는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비행거리 600㎞) 2발을 발사했다. 유엔 제재 위반은 물론 남북 간 군사합의까지 위반한 적대적 행위다. 특히 이번 도발은 대한민국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는 영공을 침범했고, 중국은 군사주권을 훼손했다. 북한은 우리 영토만을 사정권에 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잘못은 전적으로 도발을 감행한 북·중·러에 있다. 하지만 빌미를 제공한 건 한·미·일 통수권자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가치는 물론 안보까지 돈으로 환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동북아 안보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 도박으로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오늘의 선진 일본을 있게 한 평화헌법을 바꾸려 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까지 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더 큰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안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중략) 도쿄에도 갈 것"이며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된다"며 "자주국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어느 하나라도 지켰는지 묻고 싶다.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거의 전무했고, 4대 한미군사훈련도 중단된 지 오래다. 자주국방력의 핵심인 한국형 3축체계(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 및 대량보복) 용어는 사라졌고, 군 경계태세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국방·안보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지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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