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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목 놓아 울부짖는 심정으로 다시금 일본을 생각한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폭넓은 영역에서 우리는 일본에 중독돼 있다. 오죽하면 우리의 미래는 일본의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할 정도일까. 일본과 우리는 역사상 수많은 교류가 있었다. 불행히도 우리 역사 교과서의 치욕적인 기록을 대부분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침략 DNA는 삼국시대를 넘어 고려시대에는 더욱 강화돼 우리 해안에서 끊임없이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대는 지울 수 없는 치욕의 7년 전쟁 침략자로,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로 힘을 불린 근대에는 무려 36년의 식민 지배를 해왔다. 망국의 후유증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의 주변을 배회한다. 그런데 그들이 또다시 침략을 기도하고 있다. 다만 명목상으론 경제보복이라는 칼을 빼들고서 말이다.

과거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기면서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청을 조선에서 배제하고 랴오둥반도와 타이완 등을 전리품으로 얻어 득의양양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 동맹국들과 연대해 랴오둥반도가 일본에 귀속되는 것을 막았다. 랴오둥반도 지배권을 포기해야 했던 일본은 이를 굴욕으로 여겼다. 일본은 힘을 키우고 치밀한 외교전략으로 러시아에 앙갚음을 하는데 딱 10년이 걸렸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발틱함대를 격파했다.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은 노골화됐다. 그 후 결과는? 잘 알다시피 일본의 패망을 부른 태평양전쟁의 서막이었다.

일본이 한국의 생명줄인 반도체산업의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바로 전쟁이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가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을 판결하자 도리어 경제력과 기술력을 무기로 보복 전쟁을 걸어오는 것이다.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중국이 한국에 보복을 하니까 일본도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저러나 싶어 분노까지 치민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참에 과거 일본이 러시아를 제압했던 것처럼 조용히 힘을 길러 일본에 앙갚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만감이 교차한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약자에 대한 명백한 침략이다. 우리나라가 마치 동네북으로 인식돼 아무나 때려도 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자국우선주의로 원칙과 관례를 무시하고 오직 자국의 이익만 내세우는 미국을 넘어선다. 이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청나라, 일본, 러시아에 치이던 때와 비슷하다. 우리는 사드 갈등 때 미국을 겁내는 중국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미국이 맞아야 할 매를 우리가 대신 맞았다. 그래도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에 할 말을 못했다. 그럼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해 일본차 등 일본산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주장과 일본 총리의 선거 전략에 휘말릴 수 있으니 과잉 대응하지 말자는 반론도 있다. 그 가운데 장기적으로 수입 다변화를 도모해 일본을 무력화시키자는 주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힘의 논리다. 우리도 일본에 보복할 힘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그도 아니면 다신 이런 굴욕을 당하지 않게 힘을 길러야 한다. 일본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모질게 강하다. 최근 일본 총리의 이중적인 행위를 보라. 미국과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이것이 다 힘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치권을 보면 국가를 위하는 정치는 없고 오직 당파싸움에만 몰두해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다. 제발 누워서 침뱉기로 국력을 낭비하지 말자. 어떻게 나라의 힘을 키울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북아는 맹수가 득실거리는 정글이나 다름없다. 과거 일본이 러시아를 잡았던 것처럼 우리가 힘을 키워 10년, 20년 뒤에 일본을 제압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일본의 치졸하고도 악랄한 침략 행태를 보면서 다시금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토(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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