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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여행이나 출장 끝에 집에 들어서면 내 집만큼 편하고 좋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존재도 그렇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늘 함께 지내다 보면 그 가치를 망각하게 된다. 때로 우리는 타인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배려 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지내거나 어려움에 처한 순간, 잊고 지내던 가족의 힘을 깨닫게 된다. 영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1903년을 배경으로 다복한 가정의 행복을 기리는 작품이다.

 지역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스미스 씨는 1남4녀의 가장이다. 이들 가족은 고향 동네인 세인트 루이스에 누구보다 애정이 깊다. 뉴욕만큼 대도시는 아니지만 이듬해인 1904년에 열리는 세계 만국박람회의 개최 도시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모두 들떠있었다. 그러나 이런 5남매의 기분과는 달리 아버지는 저기압이었다. 재판에서 패소한 스미스 씨는 여유로운 식사와 휴식을 원했고, 가족들은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맞춰주었다. 그런 까닭으로 자녀들은 연애사를 비롯한 일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아버지가 아닌 엄마와 공유했다. 피곤함을 덜어 들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는 일들이 종종 생겨났다. 그러나 가족의 의도와는 달리 스미스 씨는 그 결과 소외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뉴욕으로 이사를 갈 거라는 깜짝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 소식에 기뻐할 수 없었다. 정든 이웃과 친구들, 미래를 약속한 정인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지만 아버지의 결정은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사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 막내 딸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아버지는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감정을 공유한 가족들은 이전보다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되어 고향인 세인트 루이스에서 살아간다.

 1944년 작품인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2차 대전 시기에 개봉한 작품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20세기 초반, 만국박람회를 준비하는 희망과 번영의 분위기를 통해 전쟁을 겪고 있던 당시 대중들을 낭만적인 세계로 이끌었다. 영화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흑백이 아닌 색채의 재현으로 화사하게 표현되었고, 주연 배우 주디 갈랜드는 부드러운 미소와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관객들을 위로했다. 75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영화가 예전과 같은 재미와 위안을 주긴 힘들겠지만 다복한 가정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는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대체로 우리는 갖고 있는 것 보다 갖지 못한 것에 갈증을 느낀다. 손에 쥐고 있는 것 보다 저 멀리 있는 대상이 밝게 빛난다고 느낀다. 그러나 행복한 삶이란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사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 내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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