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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일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로드킬(Road Kill)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다. 무고하게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운전자의 안전, 사회적 비용 발생 탓이다. 아다시피 로드킬은 동물들이 자동차에 의해 치여 죽는 상황을 말한다. 거미줄 같은 도로가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동물들의 서식지는 줄면서 그들의 경계를 막무가내로 침범하는 시대적 상황이 빚어낸 비극이다. 경제발전과 인간의 편리를 위한 대가를 애먼 목숨들이 치르고 있다. 그렇게 매년 상당수의 생명이 인간의 길 위에서 비명횡사한다. 로드킬로 희생되는 동물들은 양서류, 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 다양하고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은 물론 멸종위기종인 삵, 그리고 반려동물로 자리잡은 개나 고양이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지난해 국내 한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4천522건의 로드킬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야생동물의 천적이 인간이 만든 도로인 셈이다. 이제 또 하나의 죽음을 로드킬에 대비해보자. 인간을 포함해 온갖 생명체에게 닥칠 비극이다. 건수로도, 비용으로도 추정할 수 없는 규모다. 급작스러운 충격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서서히 고통 속에, 혹은 치명적인 다른 어떤 형태의 악영향으로 죽어간다. 필자가 이름을 붙여봤다. 바로 ‘플라스틱킬’이다. 현재 로드킬 못지 않게 플라스틱킬도 현실로 드러났다. 국내외 뉴스매체 등을 통해 다종다양한 생명체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거의 죽기 직전에 구조된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되는 요즘이다.

 상황과 모습은 처참하다. 황당하고 허망하다. 모든 생명체의 천적이 이제는 인간이 만든 각종 플라스틱이지 않을까. 로드킬의 피해자는 주로 포유류, 인간은 가해자, 상황은 도로 위. 플라스틱킬은 피해자 - 전 생명체, 인간 - 가해자이자 피해자, 상황이나 장소 - 특정할 수 없음, 피해규모 - 예측불가. 2017년 7월부터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한 치약, 화장품 등 제품 생산과 수입을 금지한 우리나라다. 매우 발빠른 대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여성화장품, 접착제, 코팅제 등을 만들며 (초)미세플라스틱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나름대로 성상별 쓰레기 분리배출에 노력하지만 플라스틱만 보면 재활용은 9%, 소각 12%, 매립 등 79%의 현실을 보인다.

 편리와 위생, 그리고 경제논리에 올라탄 플라스틱은 새로운 소비풍조와 연동돼 그 존재감이 더욱 공고해진 듯한 요즘이다. 급증하는 위기의식과 대안 모색에의 골몰과 매우 상반된 부조리를 이룬다. 인간의 삶은 이제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인간은 여타 모든 생명체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잊은 것인가? 전문가들은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해 더 큰 피해가 없도록 "멈출 수 있다면 멈추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면 피해서 가라!"라고 조언한다. 동일한 원리로 치환하면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생산과 사용을 멈출 수 있다면 멈추라, 대체재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거나 적게 사용할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라!"이지 않을까!

 개인은 재사용을 시도한다든가, 비닐봉투와 일회용품 안 쓰기, 과대포장된 제품 사지 않고 대량구매 자제하기 등이 좋겠다. 행정은 제도와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실행을 견인할 행동 설계가 중요하다. 기업 책임 강화와 재사용 의무화, 페널티와 인센티브의 적절한 가동,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이 없는 행사와 축제의 진행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기업은 재사용과 재활용을 위해 설계된 생산이나 유통 과정 도입, 과대포장 억제, 비플라스틱 재질로 대체 등에 노력하길 바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넘쳐 흘러내린 물을 걸레로 닦으려 말고 수도꼭지를 잠글 때"라고.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끊임없이 물이 흐르는데 바닥으로 넘친 물을 걸레로 훔치는 것도 잠시, 어떻게 감당하며 근본적 해결이 되겠냐는 역설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는 세상으로 이르는 길은 ‘불편한 길’이지만 그리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가 지혜를 발휘해서 살았던 세상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을 점령하고 우리 의식까지도 마비시키기 전에 플라스틱킬의 길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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