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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현 국민대 겸임교수
# 한반도와 동북아 패권세력 교체

 우리 민족은 역사에서 배우듯이 대륙의 끝에 위치해 외세의 수난을 유달리 많이 받아 왔다. 이 와중에도 우리 조상은 불굴의 민족 정신으로 민족의 정통성을 유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이 속한 동북아는 패권세력의 교체기에는 어김없이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은 적지 않은 고난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 보면 조금은 의외의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몽골은 13세기 후반에 중국을 점령하고 역사상 가장 큰 면적의 대제국을 형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고려는 비록 몽골의 지배를 약 130년간 받기는 했으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고려는 반독립국가의 자치권을 인정 받았음은 물론 몽골 황제의 부마 국가로 파격적 대우를 받은 점은 비록 3차례 일본 원정이 실패했지만 몽골이 대륙국가에서 해양국가로 발돔움하기 위한 한반도의 중요성이 부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양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륙의 패권국가로 나아가고자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1592~1597)을 일으켰는데 일본 왜군은 불과 16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는 등 전쟁 초기 단계에는 일반 백성과 교전을 최소화하고 당시 국왕인 선조의 항복을 받아내어 자신의 통솔하에 두려는 작전을 구사했는데 선조가 의주로 도망가고, 명나라 지원군 참전, 이순신 장군과 의병 활약 등으로 실패를 보게 된다(이 같은 상황은 전쟁의 화의가 실패로 돌아간 1597 정유재란 시에는 완전히 바뀌어 양민학살, 포로 압송 등 민간인 수탈이 이뤄짐). 이 과정에서 대륙 진출을 위한 한반도의 중요성에 대한 일본의 시각을 보여준다.

 명나라를 이어 중국의 지배자로 등장한 청나라 역시 두 차례 조선을 침공하는데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거치며 소위 인조의 삼전도 치욕을 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두 차례 호란을 일으킨 청나라 태종인 황태극(1626~1643 재위)은 청나라의 체제를 완성한 위대한 군주로 기록돼 있는데 그는 몽골 부족과 결혼 동맹을 통해 8기군 체제를 완성해 대륙 지배를 구상했다(만주족 2개 부대, 몽골족 1개 부대, 총 15만 규모 군사력으로 추산). 이 연합군에 조선을 포함하고자 시도한 전쟁이 두 차례 호란이었는데 조선의 저항이 심상치 않자 청나라는 최소 명나라와의 교전 시 조선이 중립을 지키는 최소한 결과를 얻고 중국 통일에 성공했다.

한국이 치욕으로 생각하는 삼전도의 굴욕은 만주족의 부족 간 전쟁에서 패장의 항복 방법으로 청나라 정사인 만주원류고에는 청태종이 인조의 항복 이후 직접 단상에서 내려와 인조에게 술을 권한 파격적 사건이 기록된 것은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조선의 개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청나라 최고지도자인 섭정 도르곤과 친분이 매우 두터운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아버지인 인조에게 제대로 귀국 인사도 못하고 의문의 독살(?, 1649년 사망)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함은 물론 그의 아들이 3명이나 있음에도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효종, 1949~1649 재위)이 왕위를 잇는 것을 승인하는 청나라로서는 조선을 포용해야 중국 대륙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일제시대와 한반도의 중요성

 메이지유신(1868)으로 근대화 개혁에 성공한 일본은 해양세력에서 패권국가가 되기 위한 최초의 시도로 조선을 합병(1910)하고 이어 중국에 대한 지배를 시도했다. 2차 대전 마지막 순간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 일본은 미국에 항복 의사를 전했는데 이때 항복 조건은 2차 대전 이전 상태로 일본 영토의 축소를 제안했다. 2차 대전 과정에서 얻은 만주국 및 동남아 대부분 식민지는 포기하되 한반도의 영유권을 인정하면 즉시 항복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으나, 이는 미국에 의해 철저히 거부되고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고서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은 일본과 미국이 한반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 21세기 한반도의 선택

 현재 한반도는 세계 최강대국의 무력 격전장 같은 답답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를 연결하는 링크핀 기능에 기인한 바 크다. 세계 10위권 군사 강국이면서도 주변국의 영공침범 등 무력 도발에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이 같은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해 거란과 담판에서 성공한 서희 장군(942~998)은 물론 중립외교로 국가의 위기를 막아낸 광해군(1908~1623 재위)과 외교의 교과서로 불리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1948~1960 재임)은 역사에서 한반도의 입지를 잘 활용한 현명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반면,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주변국 뒤에 숨은 선조(1567~1608 재위)와 고종(1863~1907 재위)은 망국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그레이트 게임 과정에서 세계 강대국 간 합종연횡이 빈발하고 있고, 전통적 기준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교전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의 3차례 정상회담, 한국전쟁 이후 거의 70년 만의 중국·러시아 간 동해에서의 합동 군사훈련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은 이 같은 위험을 대비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 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가르침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 북한 변수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혼돈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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