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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순차적으로 부산과 원산이 개항됐으나 지리적으로 보나 역할에서도 지극히 형식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본격적인 개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인천이 개항함에 따라 이뤄졌다. 더욱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결과로 그간 무관세(無關稅)로 일관하던 관세 행정이 개정돼 외국과의 교역에 물품 종류에 따라 5~30%까지 관세를 징수할 수 있었다. 때문에 1883년 인천 개항 후 6월 16일 ‘인천해관(海關)’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개항장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조선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한 지식이나 서양인과 소통할 수단과 이를 운영할 인력도 갖추지 못했다. 해관은 영국, 독일 등 외국인에 의해 장악돼 있었기에 우리 정부의 통제를 벗어 날 수 있었으며, 관세의 수납은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에 위탁 형식으로 넘겨줌으로써 제대로 된 관세 납부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새롭게 직면한 대외관계를 관장하기 위한 새로운 기구를 필요로 했다. 급기야 이 해 9월 19일 개항장에서의 통상사무 및 관세 수세(收稅), 외국인 입출국, 개항장의 내·외국인 문제 등을 관장·감독할 행정기관으로 인천, 부산, 원산 등지의 개항장에 ‘감리(監理)’를 둬 해관 업무를 감독하기에 이르렀다. 감리는 이름자 그대로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초기에는 화도진사에 인천감리서를 개설했으나, 1884년 8월에 이르러 제물포 항구 인근인 내동 83번지에 전통 관아건축 형식의 인천감리서를 신축 이전했다.

 감리서는 1895년 한때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됐으나 일반 행정 업무와 인천항의 통상 및 외국인 업무를 모두 담당했기 때문에 관찰사의 업무가 과중하고 성격이 다른 업무가 복합돼 있어 행정상의 어려움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1895년 개항장재판소가 신설되고 1896년 8월 개항장감리서를 다시 설치해 감리가 그 지방 부윤을 겸임토록 하게 함으로써 통상 사무를 일원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감리의 임무는 종전에 주로 통상사무만 관장하던 ‘감리’보다 그 기능이 현저하게 확대됐다. 또한 고유한 업무 이외에도 인천 부윤직은 물론 개항장재판소의 판사직, 지역내 학교의 학교장직까지 맡아 개항장에서 최고위자로서 내외의 각종 사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토록 했다. 거기에 더해 개항장에 경무관을 두고 경찰의 직무를 수행하게 돼 권력의 집중현상을 초래했다. 내동 인천감리서에 ‘감옥’이 설치된 것도 이즈음으로 추측된다.

 1895년 10월 일본인들의 조직적 계획에 의해 명성황후가 일본의 떠돌이 무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함에 따라, 1896년 2월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면서 황후 살해 사건에 가담한 친일파 대신들을 처단했다. 이 시기 백범 김구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인 육군 중위를 살해했다. 김구는 해주에서 인천감리서 감옥으로 이감됐는데, 일본영사관이 개입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김구는 인천 지사(志士)들의 도움으로 1898년 3월 19일 밤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김구는 1911년 안명근 사건의 관련자로 체포돼 17년형을 언도받았으나 1914년 7월 또다시 인천으로 이감됐고, 이때 인천항 축항공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백범일지」에는 청년 김구의 인천 감리서 감옥 수감 생활의 기억이 복원돼 있고, 탈출의 전 과정과 탈출로,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옥바라지, 그리고 인천 축항공사에서의 기억들이 모두 기록돼 있다. 더욱이 1914년의 지적도에는 옛 감리서 일대의 도로가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국모보수(國母報讐)를 목적으로 이 왜놈을 죽이노라"고 했던 청년 김구의 절규가 인천의 많은 민중들에게 애국심과 일본 침략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줬던 것은 틀림없다. 인천과 백범 김구와의 인연은 인천 역사에서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나, 우리는 그를 기념할 만한 공간도 갖추지 못했다. 인천감리서 백범 김구기념관의 탄생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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