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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지금 우리는 오로지 힘(power)이 좌지우지하는 국제정치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힘 있는 국가가 되는 꿈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근대 이후 세계 어느 나라든 자신들의 국가체제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앞서고, 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우리의 경우는 더더욱 간절한 바였다. 구한말 이 땅의 정치지도자들이라고 해서 이런 추세를 읽고 기대를 갖지 않았을 리 없다. 하나 제대로 역할을 못했기에 일본이라는 국가 안으로 강압적으로 끌려들어가 망국의 비운을 겪어야 했다. 단 한 걸음 빨리 근대국가 체제를 만든 일본에게 먹힌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메이지유신이라는 미래 구상을 통해 국가의 힘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일본이 탄생한 배경이다. 무엇보다 유신을 이끈 이들이 멸사봉공과 단합된 정신으로 국가의 웅비(雄飛)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지도층의 분발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유신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근대국가 체제를 향한 꿈과 노력의 절실함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새겨봐야 한다.

 그 결과 일본은 전근대국가체제에 머물러 있던 거대한 청(淸)을 격파했고, 러시아와 일전에서도 승리했다. 그리고 우리를 집어삼켰다. 아시아 강대국이 됐다. 국토의 크기나 국민의 수효, 경제 생산 능력 면에서 그리 대단치 않았던 일본이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미래를 염두에 둔 지도자,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 꿈과 희망이 결국에 그 나라를 세계의 강대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 강대국들을 보면 대부분 눈앞의 이익과 정략적 술수만을 좇는 지도자가 아니라 50년, 100년 후를 위해 노력한 지도자들이 반드시 있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솔직히 말하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이후 전 국민의 노력과 세계사의 흐름에서 운좋게 발전했다는 생각이 앞선다. 물론 각 분야에서 뛰어난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뒤에서 밀었다. 그 덕분에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G20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선진국 모임인 OECD에도 들어갔다. 세계에 7개국밖에 없다는 3050클럽(인구 5천만 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국가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경제력에서 세계 10위권, 그리고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등 빅4를 모두 유치한 몇 개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자랑해야 마땅하고 국민적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압력과 견제, 작금의 일본으로부터 겪는 경제 제재 앞에서 어딘지 위축되고 허둥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는 ‘선진국의 꿈’을 이야기했고, 그 반열에 들어섰다고 하겠는데 ‘강대국의 꿈’은 들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강소국(强小國) 정도가 제시된 적이 있었고 아직도 선진국의 문턱에서 자족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 우리에게 ‘강대국의 꿈’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국민 대다수의 마음속에 그 꿈은 오롯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꿈을 비전으로 국가 백년대계의 실현 목표로 내거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니체는 일찍이 역사의 세 가지를 지적했었다. 골동품 같은 역사, 기념품으로 여기는 역사, 그리고 자각과 성찰로 봐야 하는 역사가 그것이다. 골동품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를 그저 골동품처럼 아끼고 기억하는 일이다. 기념품으로 여기는 역사는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 장군, 침탈의 원흉을 죽인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린다. 마치 기념비처럼. 정작 필요한 것은 자각과 성찰의 역사 인식 빈곤이라는 문제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가 진실로 대접받기 원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존중할 만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일이 년 사이에 이뤄지는 단발성 업적이 아니라 한국 민족 장래를 향하는 원대한 이상과 그 실현을 향한 착실한 출발이 우선이다. 우리의 미래는 중국·미국·일본이 보장해주지 않는다. 자강(自强)만이 이 엄혹한 국제정치의 살벌한 속에서 국가민족을 지킬 길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고, 국가적 힘을 동원해야 할 때 일치단결하는 굳센 의지가 우선 필요하다. 노재팬(NO JAPAN)에서 예스코리아(YES KOREA)로 향한 비전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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