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노포(오래된 가게)의 공통점은 ‘대를 잇는다’는 것이다. 보통 2~3대만 가도 유명세를 탄다. 그러나 그 유명세는 단지 인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진정한 노포의 조건은 ‘장인정신’이다.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에 가면 보기 드물게 곧 4대가 물려받을 노포가 있다. 바로 ‘고기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난 ‘연안정육점’이다.


연안정육점의 시작은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최성호(55)사장의 할아버지가 닭과 돼지를 팔던 작은 노점에서 시작했다. 이후 최성호 사장의 아버지가 물려받고 장사를 이어갔다. 그래서 3대 최성호 사장은 어릴 때부터 정육점 일이 익숙했다.

사실 아버지는 평범한 일을 하길 바랐지만, 최성호 사장의 정육점 가게 DNA는 대학 졸업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정육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름에 다시 강화로 와서 연안정육점을 물려받는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좌절도 많이 하고 실수도 잦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방법대로 일하며 자신의 자리를 잡아갔다.

여전히 아버지의 가르침 그대로 가게를 이어가고 있는 최성호 사장.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처럼 아들들에게 일을 전수하고 있다.

▲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연안정육점이 자리한 골목 전경. 노희동 객원사진기자


#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정육 일을 시작한 1대 최수재 사장

현 연안정육점 최성호 사장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버지가 17세 되던 해 작고했기에 할아버지의 정육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주변 이웃들에게 들었던 것이 전부다.

1대 최수재 사장은 황해도 연안에서 한국전쟁 때 아들 최덕권 사장과 함께 교동으로 피란 온 실향민이다. 휴전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면서 교동에 정착했고, 먹고살기 위해 정육 일을 시작했다.

그는 피란 나와 처음 교통 초입의 인사리에서 어렵게 살다가 석모도 나루터 근처에서 잠깐 거주한 후 교동 양강리에서 다시 대룡리로 왔다.

처음에는 작은 노점상으로 닭·돼지 등을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다 지금의 정육점 자리로 점포를 내면서 서서히 틀을 잡아갔다.

강단이 있고 성품이 급했다는 최수재 사장은 한없이 선을 베풀었다고 한다. 동네 행사가 있으면 종이로 둘러싼 국수 뭉치를 가지고 가서 이웃들에게 나눠 줬다고 한다. 당시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대라 국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렇게 정 많고 가슴 따뜻했던 최수재 사장이 1955년 타계하고, 2대 최덕권 사장이 가업을 이어 가게를 확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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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호 연안정육점 사장이 지난달 28일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고기를 자르고 있다. 노희동 객원사진기자


# 연안정육점의 터를 완성한 2대 최덕권 사장

어렵게 꾸려 오던 연안정육점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 바로 2대 최덕권 사장이다. 최덕권 사장 나이 17세 때 최수재 사장이 타계했다. 당시 최덕권 사장은 2명의 동생을 책임져야 했다. 동생의 나이 겨우 10살 남짓이었다.

가게를 물려받은 최덕권 사장은 오로지 가족들의 생계만을 생각했다. 당시 그는 성인이 아닌 관계로 드러내 놓고 장사할 수 없었다. 그때 지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연안정육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지인은 교동 출신이었던 당시 강화군수였다.

강화군수는 최 사장이 어린 나이에 열심히 사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 장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도움에 힘입어 무난히 성인이 된 최 사장은 곧바로 사업자등록을 하면서 정식 연안정육점이 탄생했다.

3대 최성호 사장은 아버지를 도와준 지인의 자손들과 인연을 이어가며 지금도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연안정육점은 날로 번창했다. 최덕권 사장은 결혼과 함께 가정도 꾸렸다. 이후 최 사장은 소 장사를, 부인은 정육점을 맡아 영업을 이어갔다.

안정을 찾은 연안정육점은 손님이 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그로 인해 3대 최성호 사장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가업을 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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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연안정육점 식당 내부. 노희동 객원사진기자


# 현실적인 영업 전략으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3대 최성호 사장

2014년 최덕권 사장의 건강이 나빠지자 3대 최성호 사장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최성호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정육 일을 배웠고, 15세에 발골 과정까지 익혔다.

정육 일보다 평범한 직장을 갖길 원했던 아버지는 최성호 사장을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시켰고, 대학 과정까지 마치게 했으나 최성호 사장은 대학 졸업 후 서울 한 대형 마트에서 정육점을 차려 운영하면서 대를 이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14년 연안정육점을 이어받게 된 최성호 사장은 가게 옆 식당을 인수해서 ‘연안식당’을 차렸고, 이후부터 정육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수재 사장은 주로 닭을 팔았으나, 최덕권 사장은 소와 돼지까지 취급했다. 당시 우육은 교동의 소를, 돈육은 강화군의 돼지를 도축해서 팔았다. 지금은 전국을 돌며 좋은 소와 돼지를 구한 후 도살장에서 도축하고 있다.

정육점은 동네 장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교동의 인구가 많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됐다. 그러다 1990년대 말부터 인구 유출이 심해지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최근 교동대교가 개통하면서 외지의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 때문에 식사뿐 아니라 정육 매출도 늘고 있다. 늘 싱싱한 고기를 적정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운영의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자면 고기를 도축해 상품화하는 과정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최성호 사장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서 교동으로 호출해 다음 날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대뜸 ‘가게를 안 하겠다’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며 "그냥 있을 수 없어 2~3년만 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23년 만에 외지 생활을 접고 교동으로 넘어왔다"고 가업을 물려받을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또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을 배운 덕에 가업은 순탄하게 이어갔고, 지금도 경영철학이 ‘정직과 신뢰’"라며 "손님의 입장에서 장사를 하면 절대 망할 일이 없다"고 음식업 종사자들에게 조언했다.

3대라는 것에 중압감을 느낀다는 최성호 사장에게는 연안정육점이 대대손손 이어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그래서 그의 아들 또한 정육 및 축산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최성호 사장은 "정육 일이 예전에는 백정이 하는 일이라 아직도 일각에서는 편견을 갖고 있다"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처럼 어떤 직업이든 자기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장인이 된다면 절대 비난을 사는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 아들도 앞으로 이 가게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4대가 물려받을 수업을 받고 있는 연안정육점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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