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청소년들은 장래희망으로 대통령, 과학자, 의사 등 다양성이 실종된 거창한 직업만을 꼽았던 과거의 청소년들과 달리 운동선수, 프로게이머, 요리사, 웹툰작가, 뷰티디자이너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꿈꾸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 중 5위가 ‘인터넷방송 진행자’, 즉 ‘유튜버’로 나타나는 등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휴대전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쉽게 원하는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동영상 제작법만 익히면 주제의 제약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영상을 자유롭게 제작해 공유할 수 있는 점도 또 다른 선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을 활용한 1인 미디어 등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랩하는 교사’로 잘 알려진 이현지 빛가온초 교사와 애니메이션 및 비주얼 싱킹을 활용한 ‘참쌤스쿨’을 운영하는 김차명 배곧초 교사 등 경기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직접 도교육청 유튜브 채널인 ‘경기도교육청TV’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는 등 인터넷 방송을 교육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도 영상을 제작하는 동아리를 개설해 활동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성남 서현중학교에서 활동 중인 ‘영상제작동아리(SVCC:Seohyeon Video Creating Club)’는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영상에 담아내며 교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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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중학교 영상제작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


# 스스로 운영하며 커지는 협동심과 책임감

서현중 영상제작동아리는 지난해 3월 한채연(14)·지수민(14)·김수연(14)양 등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는 7명의 동갑내기들이 모여 개설한 학생자율동아리다.

정식 명칭은 ‘영상제작동아리’이지만 이들은 ‘SVCC’라고 소개한다. 학생들은 "일률적인 명칭보다는 조금이나마 개성이 담긴 명칭을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거듭된 고민 끝에 영어 명칭인 ‘SVCC’를 동아리명으로 결정한 뒤 학교에 등록을 신청했었지만, 규정상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영어로 된 동아리명 기재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영상제작동아리’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기부에 기재된 동아리 명칭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게 학생들의 반응이다. 만들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채연 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영상 편집에 관심이 있었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자율동아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우리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분야로 동아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변에 영상 제작이나 편집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학교에 동아리 개설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SVCC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스톱모션 ▶뮤직비디오 ▶단편드라마 ▶브이로그 등 다양한 주제의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촬영한 뒤 편집까지 스스로 해낸다. 영상이 완성된 뒤에는 담당교사 및 친구들과 함께 감상하고 감상평을 공유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감성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의 가장 큰 장점으로 협동심과 책임감이 길러진 점을 꼽았다.

지수민 양은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영상에 반영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친구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임감도 생기고 협동의 중요성도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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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서현중학교 영상제작동아리 학생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미

"하고 싶은 일이 같은 친구들과 다니며 찍고 싶은 건 무엇이든 찍어 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놀이인 만큼 동아리 활동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들이 동아리를 구성한 뒤 처음 제작한 영상은 지수민 양이 초등학생 때 만든 경험이 있는 ‘스톱모션 에니메이션’이었다.

스톱모션은 그림을 ‘관절화’해 각 장면을 한 장씩 촬영한 뒤 연결,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듯 연출하는 촬영 기법이다. ‘공포’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재미’였다.

김수연 양은 "학교폭력에 대한 얘기로 작품을 만들기로 한 뒤 함께 모여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데 전부 공포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며 "과거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가 죽었는데 어느 날 귀신으로 나타난 모습을 보고 놀라 죽는 내용인데, 스토리 역시 의견을 취합해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 인사동 거리와 경복궁 등을 방문하는 등의 일상을 영상으로 제작한 ‘브이로그’ 역시 방문 장소를 함께 정하고, 실제 현장에서 놀면서 느끼는 재미와 커지는 우정, 나중에 추억으로 기억될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의 모든 작품에 제목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처음 동아리를 개설할 때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 유튜브에 자신들의 영상을 공유할 계획은 없었다고 했다.

한채연 양은 영상 편집에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에 대해 "유튜브에 다른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보다가 문득 나도 직접 영상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와 함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자른 뒤 갖고 노는 모습을 찍는 등 취미로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얘기했다.
▲ 2018년 서현중학교에서 열린 ‘교내 학생자율동아리 발표회’

학생들은 "우리 동아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와 촬영을 하며 노는 느낌이 강하지만, 단순히 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도 풀고 친구와 우정도 쌓으면서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오히려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다른 친구들도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동아리 등 다양한 경험을 해 보길 바란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양운택 교장은 "현재 서현중은 전교생이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 가는 변화의 주체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활동인 ‘체인지메이커’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며 "특히 영상제작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영상을 만들어 선보이는 과정 속에 다양한 생각과 고민이 녹아 있는 만큼, 앞으로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잠재된 역량을 잘 개발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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