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평소 운동을 가기 전 간식용으로 챙겨가는 망고젤리를 사기 위해서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해당 제품을 집으려는 순간, 망설였다. 그리고는 주의를 살폈다. 제품 전면부에는 큼지막하게 일본어 문구가 쓰여 있었다. 평소 인식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은 야구장 전광판 크기만큼 크게 느껴졌다. 구매를 포기하고 다른 제품을 살펴봤다. 몇몇 일본어가 표기된 제품도 있었고, 국산으로 보이는 제품도 보였다. 하지만 국산으로 보여도 진짜 국산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젤리를 사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SNS에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알리는 캠페인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문구가 가장 인상 깊다. 아마도 이 문구가 젤리 구매를 포기한 결정적 이유인 듯하다. 최근 반일 감정을 보여주듯 공영방송 KBS 메인뉴스 앵커가 얼마 전 뉴스를 마치며 "이 볼펜은 국산입니다"라는 멘트를 했다. 당시 앵커는 뉴스 진행 중 들고 있던 볼펜이 ‘일본산’이라는 시청자 제보에 대해 해명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 앵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만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매국노 취급하는 이분법적 논리는 불편하다는 이유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네티즌들은 ‘일본 제품을 쓰고 있다면 모두 버려야 하나’, ‘고가 의료기기 90%는 일본 제품이다. 수술도 받지 마라’, ‘그 뉴스를 찍는 카메라는 어디 것이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본산 차량을 타고 다니는 한 지인은 최근 차를 운행하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괜히 주변 눈치를 살피게 되고 실외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숙이고 황급하게 차량 주변을 벗어난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턱대고 일본산 제품을 쓰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보 사진 카메라는 물론 KBS 메인뉴스 촬영 카메라도 일본 제품이다. 그 카메라로 찍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타고 전달된다.

 <박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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