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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8월 12일 월요일 제11면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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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현대시(詩) 100년사(史)에서 우리나라가 처해있던 가장 불행했던 시대를 살다 간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신동엽(1930~1969) 시인의 시(詩) ‘껍데기는 가라’ 전문이다.

 이 시는 이미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겪어 온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 ‘껍데기’로 상징되는 거짓과 겉치레 대신, 사욕(私慾), 사념(邪念) 따위의 더러움 없는 ‘알맹이’만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부정적인 세력이 물러가고 순수와 열정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적인 시어(詩語)를 통해 직설적으로 표현한 신동엽 시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혜택 대상국,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다는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일본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변하지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정부의 후속 대응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게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교수는 ‘아베 총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는 데 대한 우려 때문에 한국에 확실하게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우선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기술 패권으로 한국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고 진단한다.

 또 다른 학자는 ‘단기적으로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강행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담화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번 일본의 조치는 양국 간의 오랜 경제 협력과 우호 관계를 훼손하는 터무니없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글로벌 공급망까지 무너뜨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지탄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당연히 적지 않은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 정부나 기업들은 할 일이 무엇인지는 가장 먼저 파악하고, 불철주야(不撤晝夜) 대책을 수립하고 난국을 헤쳐 나가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 직면한 정부나 기업은 물론 우리 국민 누구도 일본에 대하여 패배의식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번 난국은 잘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힘을 모아 온 국민의 결기(決起)를 보여준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히려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보더라도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구한 것은 소수 권력층이나 지배층이 아니라 대다수 민초(民草)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일본인들은 도쿄 한복판에서 혐한(嫌韓)시위를 하며 한국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고, 집권층에서조차 한국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다. 일본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의식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이미 한국인들은 원래 무질서하고, 잘 뭉치지 못하며, 지저분하고 게으른 민족이고, 이기적인 데다가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저열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숨어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일부 지식층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소위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각은 숨긴 채 양측의 절충이나 타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취하는 태도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게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하여 일견 그럴듯한 말로 들리지만, 은연중 일본 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지금도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다. 식민지 시기에 조선의 경제가 일본의 경제와 같이 성장했고,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사유재산 제도, 자본주의 시장제도, 사회간접자본, 그리고 축적된 인적 자본 등이 모두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동엽 시인을 대신하여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 를 정중하게 헌사(獻詞)하고자 한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중략)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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