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다가구 빌라에는 으레 반지하방이 구성돼 있다.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루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빌라 반지하는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는 특히 거주가 취약하다. 장맛비가 스며들어 천장과 벽으로 물이 새는 탓이다. 심각한 누수 앞에서 변태적 행인들이 벌이는 치안 문제는 신경 쓸 틈도 없다. 스며든 물기를 먹은 푸른 곰팡이가 장판과 벽지 틈에서 새까맣게 번식한다. 보일러를 틀어서 말린다고, 깨끗한 걸레로 닦는다고 없어지는 미물이 아니다. 임대차 계약이면 민법에 따라 임대인의 적극적인 수선 의무가 인정되지만 매매물건은 사정이 달라진다. 매매계약 체결 후 6개 월이 경과한 경우나 매도인과 이웃 집들이 누수현상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수요일 법원 기자실을 찾은 팔순 노모(老母)의 절박한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모가 증빙자료로 가져온 사진에는 천장 누수를 막기 위해 김장용 고무통을 방 한가운데 둔 것도 있었다. 물이 줄줄 샌다는 뜻이다. 물론 할머니는 수백만 원을 들여 자신의 반지하방 누수공사를 먼저 진행했다. 하지만 공사 효과는 얼마가지 못했다. 할머니는 윗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집 누수공사를 맡았던 시공사 관계자도 누수의 원인으로 바로 윗집을 지목했다. 노모는 이를 토대로 윗집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아랫집 누수를 잡았으니 윗집에서 협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과연 윗집 주인은 할머니의 요구에 응해서 하자 진단이나 누수공사를 자발적으로 벌였을까.

 결론은 ‘노(NO)’다. 할머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돌입했다. 하지만 소장에는 노모의 주장을 뒷받침할 공신력 있는 누수탐지 보고서가 누락됐다. 법원은 노모에게 약 300만 원 정도 드는 법원 감정을 받아 보라고 알려 드렸으나 할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실제 노모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법원 앞에 즐비한 대서소(代書所)를 찾아 다니며 소송을 벌였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한 변호사는 할머니에게 시중 온라인 업체를 통해 50만 원 내외의 누수진단을 먼저 받아보고 원인지를 찾은 뒤, 한국기술인협회나 법원감정인, 건축시공기술사의 확인서명이 들어 간 하자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할머니를 설득했다. 경험치나 감정적 논리로 지독한 여름철 누수를 막을 수는 없다. <김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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