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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일찍이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해서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로 교육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생각은 청소년들에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굳건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 있는 행동을 당당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생각의 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철학교육 역할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서양의 철학 교육 실태를 살펴보자. 유럽의 엘리트 양성을 담당해 온 교육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철학과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쳐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 분야에 무수히 많은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는 옥스퍼드대학의 간판 학부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 융합과정)에서는 철학이 세 학문의 필두로 꼽힌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과정인 리세(lycee)에서도 이과와 문과를 불문하고 철학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또한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경우 첫날 첫 시간에는 전통적으로 철학 시험이 실시된다. 미국은 어떤가?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아스펜 연구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이 높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 간부 후보들이 특정 교육 장소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 철학의 고전을 착실히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다. 더불어 혁신적인 어젠다를 정하는 것도 바로 철학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정작 또 다른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상 같은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과거 우리의 역사는 주변국의 노략질, 침략, 국토유린, 대량학살,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어왔다. 그 속에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사악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할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들로 채워졌다. 빨갛다 못해 아주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설파했다. 이는 가해국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피해국 입장에서는 한시도 가벼이 할 수 없는 폐부를 찌르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청소년 시절부터 유사한 역사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인지적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생각, 차원 높은 의식을 고양하는 철학교육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의 지혜로운 사상가나 철학자들은 동시대의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말하고 또 글로 남겼다. 이제 우리는 선각자들이 남긴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만큼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 사고에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전 세계는 교육혁명 중이다. 그중에 단연 독보적인 핀란드를 주목해 보자. 핀란드는 고정적인 학년별 커리큘럼을 없애거나 교과별 수업을 하지 않는 추세다. 학교 수업이라 하면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 모여 같은 교과목을 공부하는 모습을 연상하는 우리에게 핀란드의 교육 제도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숙고하게 만든다.

 이때 ‘변증법’이라는 철학적 사고를 이용하면 새로운 교육제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교육 시스템이 부활했다는 관점이 생긴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중요하다. 이런 중요한 물음을 고찰할 때 강력한 해결 수단 또는 현명한 생각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철학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청소년에게 철학교육으로의 무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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