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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객원논설위원)
이제는 매사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닌데 하는 일이 상당한 세월 내 속을 툭툭 건드렸다. 한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일반적으로 한자는 중국문자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남의 나라 문자인 그 수만 개 한자마다 이른바 중국말이 아닌 한국말 발음이 가능한지 의아했다. 틈나는 대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자전(字典)에 한자의 발음방법을 한자로 표기한 것을 ‘반절법’(反切法)이라 한다. 우선 자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허신의 『설문해자』와 4만9천여 자의 한자를 집대성한 『강희자전』에 대해 알아본다. 앞엣것은 1세기 중국 고대 한나라에서 9천여 자의 한자를 모아 편찬되었으며, 뒤엣것은 1716년 청나라 강희제의 하명으로 5년에 걸쳐 편찬된 대옥편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대표국가라 할 수 있다. 이 두 문헌에 적힌 반절법으로 한자를 발음하면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 말은 우리 한국어라 한다. 일자일음(一字一音) 즉, 모든 한자의 글자 하나하나마다 발음 하나인 것은 한국어뿐이란다. 중국어는 글자 하나씩마다 둘 이상의 복모음으로 발음되는 것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희자전에 있는 한자들 중에는 발음할 수 없어 무음으로 처리되는 것이 30% 정도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 옥편은 이른바 예전 중국 왕조에서 만든 책이다. 그런데 왜 중국어로 완벽하게 발음되지 않을까. 더구나 요즈음 중국어 발음기호는 왜 제 나라 문자를 두고 1958년부터 영문자 알파벳으로 표기할까. 자기들 선조가 만들어 수천 년간 써오던 문자를 번자체라 하여 멀리하고, 획수를 줄여 만든 간자체로 바꾸어 쓴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한자가 70% 정도를 차지하는 일본어도 반절법에 따른 일자일음의 발음이 온전치 않다. 또한 그들만의 약자체 한자를 사용한다. 한자는 4세기말쯤 백제 왕인박사가 일본에 전파했다. 한자에서 파생된 일본의 가나문자도 우리나라 구결문자에서 유래됐단다. 지난 2000년 일본 학자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주장이다.

단재 신채호는 1924년 동아일보에 조선 고래의 문자를 논설하면서 구결이나 이두문이 조선에서 일본에 전해진 것이라 했다. 게다가 이두문은 설총 훨씬 이전인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미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두와 구결은 한자의 음, 뜻 또는 획수를 빌려서 조사나 우리말식으로 쓰던 문자다. 향찰이나 구결을 포함한 이두문은 범(汎)한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누천년 전부터 한자 활용의 편의를 위하여 이두문을 보완하여 써 왔다. 더구나 오늘날까지 한자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지키면서 정자체를 쓰고 있는 나라는 세 곳 중 한국뿐이다.

우리는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과 함께 한자를 자연스레 섞어 쓰는 민족이다. 세계 최상의 한자전문사전이라 회자되는 『한한대사전』을 가진 문화민족이다. 전질 20권에 한자 6만여 자와 한자어 53만여 단어를 싣고 있단다. 여기에는 한자어의 약 20%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만 취급되는 것이라 한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서 30여 년에 걸쳐 편찬하여 2008년에 간행되었다. 지금은 디지털화 작업이 한창인 걸로 알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영어사전』처럼 세계인 누구나 인터넷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한자대사전이 나오길 고대한다.

한자는 모양(形)·뜻(義)·소리(音) 3요소로 되어 있다. 이 3요소의 조화로운 활용은 우리말로 하는 한자 발음에서 잘 묻어난다. 예컨대 ‘호흡(呼吸)’을 우리말로 발음하면 날숨과 들숨이 그 문자 ‘呼’·‘吸’과 어울리지만, 중국말이나 일본말로 발음하면 그리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는 『아시아 이상주의』의 저자 이홍범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쯤 되면 한자는 우리의 선조가 우리 생각과 발음에 알맞게 만든 문자라 할 수도 있겠다. 어찌 한자라는 타국문자를 빠짐없이 한국어로 발음할 수 있는지―나의 의구심에 대한 일단의 사유를 피력했다. 이밖에도 중국인들이 동이문자라고 인정하는 한자의 기원, 역사적 친연성 및 한글과의 상보성에 대해 살펴볼 까닭이 남아 있다. 작금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 하고, 중국은 영공 침범에다 산동지역 발굴 고대 우리의 홍산문명을 자기 역사로 각색하고 있다. 눈 뜨고 당하는 이런 현실 앞에, 제 것을 제 것이라 하지 못할 때 더 울분한다. 문자에는 얼이 들어 있다. 한자는 한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문자라면 억측일까. 울분을 시조로 달랜다.

- 한자의 고향 -

얼마나 긴 하세월을

남 문자로 살았던가

모양과 뜻 발음으로

그리 너를 얼렀는데

하마나

나를 반겨줄

고향길이 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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