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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 "동물은 감정적 존재"라고 했다.

 그 내용 가운데 "침팬지 수컷은 권력과 섹스에 큰 관심을 쏟으며, 그것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불사할 준비가 돼 있다. 서열이 높으면 지도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데 그러면 질서를 유지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세종서적·이충호 역)는 구절이 나온다.

 아프리카 밀림의 고릴라 세계도 마찬가지다. 열 마리 남짓 무리를 이루고 사는데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컷 고릴라는 무리의 암컷들과 짝짓기하는 우선권을 갖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데 이런 특혜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의무를 다할 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가 질 때가 되면 고릴라들은 서둘러 나무 위에다 잠자리를 마련해 가장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는데 대장 고릴라는 나무 밑동 땅바닥에서 불침번을 선다.

 어둠 속에서 무리들 쪽으로 접근하는 소리가 들리면 대장 고릴라는 ‘더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로 자신의 손으로 쿵쿵 가슴을 두드린다.

 키는 우리 인간보다 크지 않지만 몸무게가 대략 120~130kg쯤 되는 수컷 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면 마치 큰북처럼 소리가 난다. 조용한 밤의 숲에서 약 1㎞까지 울려 퍼진다.

 소리가 클수록 덩치가 크다는 뜻이니 가슴을 칠 때 더욱 세게 치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까 접근하는 쪽에 겁을 주겠다는 의도다.

 대장 고릴라의 행동은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것. 이런 면이 없으면 무리들은 하나둘 떠나 버리고 만다. 결국 대장 노릇을 하려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건기가 되면 먹을 게 귀해지고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버펄로나 코끼리를 사냥해야 하는데 두목 사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무리의 생존을 책임지지 않고 특혜만 누리는 존재가 왜 필요하겠는가?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로마제국의 시저는 갈리아 지역에서 승승장구했는데 비결은 간단했다. 위기 때마다 앞장서는 것이었다.

 전투 중 어느 한 곳의 방어선이 붕괴됐다 싶으면 그는 그때마다 백마를 타고 앞장서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위험천만한 일 아닌가. 적군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고 풍전등화 같은 현실에 직면해 병사들은 더욱 분발해서 적을 물리쳤다. 그러다 보니 전세가 역전돼 승리할 수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인간의 세계에서나 리더는 위기를 맞았을 때 앞장서야 하고 해결해야만 집단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

 케네디는 간단히 답변했다. "위기가 나를 찾아 왔거든."

 중국 고사에 나오는 도둑의 왕 도척은 우두머리 도둑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道)에서 첫 번째로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우두머리가 자기의 일신을 돌보지 않을 때 무리의 존중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위기를 피하고 보신에만 급급했다가는 우두머리는커녕 무리 속에 남기도 힘들다.

 개원절류(開源節流 )라 했다. 동력을 확보하며 쓸데없이 버려지는 힘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리더의 덕목인 것이다.

 문(門)의 가장 큰 기능은 여닫음이다. 막힌 것을 뚫어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게 하고, 넘치는 것을 막아 안전성을 확보하는 기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개각을 보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캠코더 인선에다 좁은 인재풀의 회전문 인사가 여전해 보인다.

 지금 나라 안팎이 갈수록 난관에 빠져드는 비상한 상황이다. 대통령 스스로 ‘전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진단했듯이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비상한 각오를 지닌 새 인물을 등용해 탈출구를 찾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미 ‘공무원 사건·사고’의 대명사가 된 외교부, 허점이 거듭되는 국방부는 그대로 뒀다. 고릴라의 가슴 치는 북소리, 무리의 앞에서 돌진하는 사자, 방어선이 무너지는 쪽으로 달려가는 시저, ‘위기야, 너 잘 만났다’며 존재 가치를 보여준 케네디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기대할 수 없는 과분한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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