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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주룩주룩 비 내리는 날이 잦았다. 비 오는 날 필수품인 우산을 고를 때 어두운 색상은 피하는 편이다. 우산의 목적이야 비를 맞지 않는 데 있지만, 이는 기본 요소인 만큼 컬러에 신경을 쓴다. 밝고 환한 우산이 머리 위에 펼쳐지면 흐린 날과 상관없이 화사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똑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또한 음악이 돼 감상에 젖게 한다. 그래서일까. 여름 장마의 후텁지근함 대신 촉촉하면서도 달콤쌉싸래한 가을비를 닮은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20대 초반의 사랑이 으레 그러하듯 자동차 정비공 ‘기’와 어머니의 우산 가게에서 일하는 ‘주느비에브’의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다. 언제, 어떻게, 왜 상대방을 사랑하게 됐는지 따져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이들이 생각하는 결혼도 심플했다. 그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에는 걸림돌이 있었으니, 알제리 전쟁 소집영장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영원과도 같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듯 2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전쟁터에서 연락이 두절된 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에는 주느비에브의 상황도 좋지 못했다. 그렇게 어긋난 두 남녀는 6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다. 각자의 가정을 꾸린 이들은 담담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그때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혹은 못했는지, 먼저 묻지도 애써 답하지도 않은 채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내일을 약속하지 않은 작별을 건넨다.

 클래식 영화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쉘부르의 우산’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196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 작품에는 익숙한 멜로 코드와 함께 대범한 실험성도 돋보인다. 우선 뮤지컬 장르인 이 영화가 일반적인 뮤지컬과 다른 점은 음악의 활용에 있다. 러닝타임 내내 끊김 없이 이어지는 음악은 대사 부분도 노래로 전개되는 레치타티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오페라적 특징이기 때문에 ‘쉘부르의 우산’은 ‘시네 오페라’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관습을 거부한 엔딩에 있다. 경쾌한 춤과 노래를 동반한 뮤지컬 장르는 보편적으로 가벼운 로맨스와 결합해 해피엔딩으로 맺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기자기한 컬러로 동화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결별로 끝맺고 있다. 이로써 영화는 관객들에게 결별의 원인인 전쟁을 재고하게 한다. 누벨바그의 기수로 꼽히는 자크 데미 감독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와 오락 장르를 실험적으로 활용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 낸 것이다.

 그러나 55년이란 세월 동안 이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가깝다. 데미 감독이 정교하게 쌓아 올린 아름다운 음악과 몽환적인 영상미는 가슴 한쪽에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꿈결처럼 펼쳐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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