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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회장
70대 중반에 들어선 박현조 시인의 시집 「시니어 봄의 노래」를 받았다. 문학의 서정성과 함께 인생 자전의 교훈을 함께 안겨 주는 시집이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맞아 아직도 일하고 싶은 젊은이였다. 시니어에 대한 멸시와 냉소, 그들의 인격을 묵살하고 일터에서 떠나게 하는 이 사회에 대항해 일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시니어 노조를 결성했다. 전국시니어노동조합 충남중부지역지부는 건물 관리, 경비, 미화를 비롯한 궂은일을 도맡는 노인들의 모임이며 그는 위원장을 맡았다. 사용자여, 근로자를 관대히! 근로자여 내 일처럼 성실하게! 우리 함께 갑시다. 오늘의 행복, 내일의 건강을 위하여! 란 구호를 내걸고.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아버지가 되었다/ 어느/ 구름 낀 밤을 지새우니/ 시니어라 부른다/ 다니던/ 직장에서 떠밀려/ 허수아비처럼/ 하늘을 지키다/ 인생의/ 이모작/ 하늘만 쳐다볼 수 없어/ 내디딘 건물 관리 미화, 경비, 잡일/ 벌 꽃 무리들,/ 키가 큰/ 빌딩 숲에 가려/ 숨을 몰아쉰다.』<어느 날 시니어가 되다>

 어느 날 정년퇴직 대상에 걸려 일상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렸지만, 그로선 겨우 인생의 절반을 채웠을 뿐이다. 퇴직자 중 건강하고 운이 좋은 시니어들은 건물 관리와 경비로 인생의 이모작을 시작할 수 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터이다.

 ‘실패도 꽃’이란 시에서 그는 결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 뼈저린 마음의 상처를 고백하고 있다. 2010년 6월 2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실패하고 눈물의 꽃을 피웠다. 정치 브로커에 속아 퇴직금을 날리고 값비싼 교훈의 꽃을 가슴에 안았다. 그 일로 인해 박 시인은 인천에서 충남 산속으로 현실 도피를 했다.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을 택했고 아파트, 건물 관리원을 전전하며 사람이 돼 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인천을 떠날 때 받은 마지막 선물은 선배가 목에서 풀어준 빨간 목도리와 수녀 어머니가 손목에서 풀어 끼워 준 손 묵주뿐이었다.

 하지만 극한 직업에서 일하면서 무시당하는 관리원, 미화원, 경비원들의 가족이 되고 보호자가 됐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시인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치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를 독자들이 반면교사로 삼기 바라는 심정에서 인생 자전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서른 번의 교차로’란 시에서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서른 번의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큰 병을 앓았다. 임진강을 시작으로 장단 고랑포에서 아버지는 북으로, 어머니는 남으로 길을 떠났다. 박 시인이 따랐던 어머니는 40대에 요절하셨다. 그는 천연두 열병으로 오른쪽 눈 주변 흉터, 폐결핵 가슴앓이 상처, 맹장, 탈장, 전립선암 수술 등 수많은 고개를 넘을 때마다 떠오르는 환상의 무지개를 사랑했다. 고랑포에서 용산, 영등포 역전에서 마포, 인천 송림동, 구월동, 만수동, 다시 구월동, 성남시 신흥동, 성남동, 중동, 광명시 광명동, 철산동, 다시 인천 주안동, 석바위, 다시 주안, 효성동, 인현동, 충남 청양으로 왔다 갔다 서른 번의 인생 교차로를 건넜다. 열세 번의 직업 환승도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정교사, 국수 공장, 중국집 주방, 월부 책장사, 목제공장, 방직공장, 기사, 화약공장, 공무원, 공사 임원, 월급 사장, 아파트 관리소장, 문예 전문기자, 건물 관리소장 등이다.

 9급 공무원을 시작으로 부이사관 명퇴, 공사 임원 발탁, 야간 대학, 대학원을 마쳤고 1998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열세 권의 시집을 집필했다. 1975년 결혼해 아들·딸 하나, 손자 둘이 있다는 그는 "소나기는 한 번 내리지 않는다. 그때마다 피는 무지개, 잠시 뜨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사랑한다"고 옛날을 회억했다. 그는 부끄러울 수도 있고 때로는 자랑스럽기도 한 인생 여정을 한 권의 시집에 채워 놓았다.

 시는 소리 없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형형색색의 미사여구로 채워지지 않더라도 삶의 진실과 사랑이 가득하다면 독자들은 감동의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근로자와 노동운동을 같이 하는 ‘행복한 교회’ 손양주 목사는 "박 시인은 인생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낮은 곳으로 옮겨와 나를 낮추고 삶의 애환을 시니어와 함께 나누며 미래를 꿈꾼다. 이러한 시인의 시는 살아가는 삶이 시가 돼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며 추천사를 대신했다. 독자들의 공감을 대변한 듯한 내용이기에 다시 한 번 시집의 책뚜껑을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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