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중국의 경기지표 부진에 이어 12년 만에 미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까지 나타나는 등 세계가 경기침체 우려에 빠져들고 있다. 무역의존형 경제구조를 띤 우리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이 거의 월 단위로 하향 조정되고 있다. 대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무리한 소득주도성장 추진으로 투자가 얼어붙었고,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 악화는 물론 중산층 및 자영업 계층까지 쪼그라들고 있다.

 골드만삭스(1.9%), 모건스탠리(1.8%) , ING(1.4%) 등 대부분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올해 한국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하는 이유다. 이렇게 성장률이 쭉 떨어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세수 부문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13일 정부와의 비공개 당정 협의에서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40조~60조 원 늘어난 510조~530조 원 규모로 요구했다고 한다. 이유는 뻔하다. 총선이 다가오니 돈을 퍼붓겠다는 것이다.

 물론 경기가 침체되면 재정 확대가 도움이 될 순 있다. 하지만 내년도 슈퍼예산 편성은 세 가지 이유에서 극히 비관적이다. 첫째, 현 정부의 재정집행은 성장률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새롭게 늘어난 항목 대부분이 현금성 복지 지출이다. 이러한 지출은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기업 실적도 개선시키지 못해 결국 세수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둘째, 확장적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만 그 효과가 입증됐을 뿐이다. 지금처럼 공공부문 지출이 만성화되면 오히려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구축(驅逐)효과’만 발생한다. 이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까지 훼손시킨다.

 셋째, 작금의 상황에서 슈퍼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건 빚을 늘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선대들의 피와 땀으로 여기까지 왔다. 우리도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도리다. 선거에서 표나 얻으려고, 혹은 당장 내 배나 채우려고 미래세대로 고통을 전가하는 파렴치한 짓을 해선 안 된다. 지금은 세출 부문의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되돌아올 보장이 없는 불요불급한 선심성 지출은 과감히 정리하고, 세수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소재부품 국산화 등 산업 경쟁력 강화에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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