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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앞선 기호포럼에서 어떻게 한자라는 타국 문자를 한 자도 빠짐없이 한국말로 발음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과거 중국 왕조에서 만든 주요 옥편 「설문해자」와 「강희자전」에 표기된 반절법(反切法)에 따른 정확한 발음과 한자의 3요소(모양·뜻·소리)에 잘 어우러지는 발음은 한국말임을 밝혔다. 따라서 보통 알고 있는 상식과 달리, 한자는 중국문자라기보다 한국문자라는 게 더 타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자의 속성이나 기원을 살필 때는 현재 국가 간 강역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그 문자가 발생했던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대에 중국 산동지역을 비롯해 동북삼성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에 걸친 대륙국가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를 상정하면서 한자의 연원을 캐 본다.

 문명비평가 임어당을 비롯한 중국의 노신, 장개석, 낙빈기, 주은래 등 양식 있는 학자와 정치인들은 한자를 동이족이 만든 문자라고 했단다. 동이의 개념은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는 우리 민족을 지칭한다고 본다. 어제오늘까지 한자의 기원은 1899년 중국 하남성 안양현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라고 했다. 이 은나라는 3천600여 년 전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이에, 갑골문은 동이족이 만들어 쓰던 문자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더구나 2008년에는 이보다 1천여 년이나 앞선 ‘골각문자’가 나왔다고 보도됐다. 중국 산동성 창락현 지역이다. 중국 산동대 류봉군(劉鳳君) 고고미술학연구소장은 이 골각문자로부터 발전된 형태가 갑골문자이며, 그곳이 옛날 동이족의 집단 거주지역이라서 이를 ‘동이문자’라 했다.

 아마도 4천 수백 년 전쯤 그곳을 다스리던 우리의 배달국 후반기나 고조선 초기로서 언필칭 홍산문명 시대가 아닌가 싶다. 신채호는 고조선 시대에 우리 민족은 이미 한자를 익혔으며, 단군왕검 때 태자 부루가 하나라를 세운 우에게 가르쳤다는 글이 한자였을 거라고 했다. 이외에도 환웅천황 때 신지 혁덕이 기록한 녹도문이나 남해 양아리 석각문자 따위가 태고의 한자로 추론된다. 한자의 원래 이름은 ‘서글(書契)’이라는 설이 있다. 「설문해자」, 「단군세기」 등에 나온다.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에는 환웅천황이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서글을 만들었다고 한다. 혹자는 우리가 보통 쓰고 있는 ‘한자(漢字)’의 ‘한’은 중국 ‘한(漢)’나라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에 반해 서글은 우리 한(韓)민족의 글이라 하여 ‘한자(韓字)’라고 쓰는 이도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자를 ‘정음’(발음)의 본체인 ‘문자’라 하여 당시의 국문자로 인정했다. 현행 국어기본법에는 한글은 한국어 고유문자라고 했으나, 한자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한국어는 고유어와 70% 이상의 한자어 및 기타 차용어로 돼 있다. 이 한자어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고유한자어도 상당하다. 이처럼 한자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한자는 서글, 진서, 문자 등으로 불리며 쓰여오다가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한글)과 함께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오늘날까지 잘 활용되고 있다. 이제 한글전용과 한자병용의 소모적 논쟁은 넘어서야 한다. 두 가지 문자의 장점을 살려 쓴다면 한국어의 활용 여력은 무한할 것이다.

 2006년~2015년 중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가 3년마다 실시한 15세 이상 여러 나라 학생 대상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가 있었다. 한국 학생의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은 상위권이긴 하나 갈수록 떨어졌다고 한다. 초·중등학교 한자교육 선택과목 편성에 대한 2016년 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재판관 반대 의견에는 한자의 우수성과 효율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한자에 의한 이해력 증진은 물론 사고력·창의력 함양 및 한자의 풍부한 조어력과 함축성을 높이 샀다. 아울러 한자는 수천 년간 우리말을 표현해 왔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사상을 담아내는 도구라 했다.

 한겨레의 기나긴 발자취 속에 한자는 시종 고락을 함께해왔다. 동이문자, 적어도 동방문자라고도 불리는 한자를 이만하면 우리 것이라 해도 되지 않나 싶다. 우리는 표음문자인 한글과 표어문자(뜻글자 및 소리글자)인 한자를 모두 가졌다. 풍부한 감성과 예리한 이성을 자유자재로 그려낼 수 있는 말과 글을 가진 민족이다. 올해 광복절 문 대통령의 경축사는 울분을 넘어선 평정한 톤이었다. 이제 울분을 넘어 평정을 찾을 때다. 시조로 읊는다.

 - 동이문자 -
 
 사실이 무엇일까
 
 반만년이 흘렀는데
 
 갑골에다 골각에다
 그제서야 보인 뜻은
 
 참말로
 뉘 문자인지
 임어당이 한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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