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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노령 인구 700만 명 시대. 줄어들기보다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위해 운영하는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가 경로당(敬老堂)인데 전국에 6만6천 곳 정도라고 한다. 인구 비율에 비춰 보면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1곳에 100여 명 정도이니 충분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수효가 아니라 이용자가 나날이 줄어들거나 노령 인구 가운데 이용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우선 ‘젊은 노인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텃세를 부리는 노인’들이 더욱 고령화되고 그들의 권력(?)은 제어될 하등의 장치가 없는데다 운영 주체가 자율이다 보니 새로운 변화가 거의 없다. 그저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심심풀이 화투, 노래교실이나 웃음체조처럼 판에 박힌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그나마 활성화(?)된 곳이고 그렇지 못한 경로당도 부지기수다.

 경로 의식은 점점 옅어지고, 경로당은 더욱 한산해지는 데 대해 의식 있는 몇몇 곳에서 ‘개방형 경로당’이라는 개념으로 지역사회화의 접점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는 소식도 물론 있다. 여러 연령대 주민들이 교류하는 사랑방으로 변신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아이들이 경로당에 와서 전래놀이를 배운다거나, 한자 서당교실 강의를 듣거나, 노소가 함께 동네 텃밭에 나가 함께 작물을 가꾼다. 고교생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곳이 별로 많지는 않으나 머지잖아 노년층으로 접어들 베이비붐 세대가 꾸려갈 경로당 모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위 세대에 비해 학력 수준도 높고 자아실현 욕구도 강렬한 그들 세대가 작금의 경로당에 가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은 거의 없을 터. 따라서 그들의 에너지가 사랑방문화의 기본틀을 바탕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발현돼 매력적으로 펼쳐지는 경로당의 세계를 만든다면…. 경로(敬老)는 문자 그대로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다. 그런데 노령자들끼리 있는 곳에서 가능할까? 그저 나이 순서대로 질서나 챙기는 것이 경로문화라고 할 수 있나? 또 노인회장이라는 자리도 그렇다. 노인들이 동네에서 친구 사이를 맺고 즐거운 일상을 꾸려갈 수 있도록 만남과 어울림에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하길 바란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쉼터는 전철이나 지하철이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데다 그 ‘이동 시 쉼터’에서 만난 상대가 동네에서 만난 이웃보다 훨씬 편하다는 분도 많다. 동네에 머물 만한 곳이 부족하다는 건 경로당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이제 ‘개방형 경로당’을 지역사회에 걸맞게 변화시킬 시점이 됐다. 어르신들의 생애 경험이 공동의 소프트웨어로 축적되고 세대를 넘어서 문화의 ‘발효’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문화사랑방 경로당’이 필요하다.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실버생산센터’ 같은 곳도 한 예가 될 수 있고, 노인문화센터에 ‘수다방’이나 노령자를 위한 스도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서로의 원기를 북돋는 가운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적극 수용되는 곳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궁극적인 운명인 늙음을 경외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롭게 시작하자는 결심을 하는데 그 자양분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감사라는 건 어떤 대상에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리 만무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못 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을 포기해 버리게 된다. 포기하지 않더라도 무덤덤하게 무의한 삶을 계속할 뿐일 것이다.

 복지라는 이름의 경로당이 애매한 공간으로 변한 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노인복지는 그저 하던 방식 그대로 지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변화에 대한 주체도 불투명하고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기관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발길을 끊는 노인들이 늘어나면 시설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몇 가지 하드웨어만 추가한다. 이런 고식적 대책을 끝내고 문화가 숨쉬는 ‘사랑방 경로당’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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