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전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jpg
▲ 홍순목 Pen리더십연구소 대표
어느 날 아버지 꽃게가 자식들에게 걸음걸이를 가르치기 위해 갯벌로 나갔다. 아버지 꽃게는 스스로 걷기 시범을 보이며 자식들에게도 자신처럼 걸어보라고 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시범을 보인 대로 걸었지만 아버지 꽃게는 왜 자기처럼 똑바로 걷지 못하느냐고 꾸지람을 주면서 다시 시범을 보이고 자식들에게 걸어보라고 했다. 자식들은 여전히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꾸지람이었다. 자식들은 아버지 꽃게가 왜 자신들을 계속 야단을 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 봤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첫째로 인간은 너무나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가 자신만큼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 자신은 똑바로 걷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아버지 꽃게처럼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외적인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거울에 자신을 비춰봐야 하는 것처럼 내적인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눈에 비춰 보기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결국 ‘스스로 자기를 바라보는 나’와 ‘사회공동체가 바라보는 나’는 일치하지 않으며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수십 년 택시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막상 운전면허 코스시험에서 탈락하는 것은 그의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시험규정을 잘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는 늘 스스로 바른 방향을 잡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점검과 사회적인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간은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꽃게가 자신과 똑같이 걷는 자식들에 대해 자식들의 잘못만을 지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엄한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잘못이라도 남의 잘못은 커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남의 눈의 가시를 보면서 어찌해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가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를 깨우친 선진들은 늘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말로 스스로 삼가고 후학들을 가르쳐 왔다.

 자신에게 추상같이 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니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면 그와 같은 잣대로 자기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규정하고 판단하고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내로남불이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등의 조롱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삼가며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

 세 번째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치관의 차이는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버지 꽃게는 자식들이 자신이 시범을 보인 것처럼 걷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걸었지만 꾸지람을 받는 것이 불만이다. 그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이때 이를 판단해 주는 것이 사법기관이고 또 언론기관이다. 사회가 맑고 투명하기 위해서는 사법기관과 언론기관이 투명하고 공명해야 한다. 정확한 잣대로 판단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사법기관과 언론기관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신뢰를 구축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개각 발표에 따라 청문회 정국으로 진입하면서 주요 후보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검증이 시작됐다. 의혹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지만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측과 도덕적으로 큰 하자가 있다는 쪽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경제위기를 미처 풀어나가기도 전에 그리고 일촉즉발의 남북관계가 경색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 그리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질서가 불리한 방향으로 재편되는 이 때에 이 모든 중요한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무엇이 중한디?라고 묻는다면 처음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민국의 미래요 국민의 안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검증 정국에 쏠림 현상은 국익에 비쳐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너희들은 왜 똑바로 하지 못했느냐고 과거에 던졌던 비난의 화살이 당신도 똑같은 길을 걷지 않았느냐는 반격으로 돌아온 모양새로 시끄러운 이때에 언론의 검증에 법적, 도덕적인 저촉사항이 드러난다면 국익을 위해서 본인과 임명권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당장 풀어야 할 더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는 스티븐 코비 박사의 제언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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