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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인환 인천동구청장
인천의 ‘작약도’는 인천시 동구 만석동 3번지로 동구에 위치해 있는 유일한 섬이자, 생태공원이다.

 한때, 연간 25만여 명이 이용했던 유원지로 인천시민에게 도심 속 백사장에서 해수욕을 했던 추억과 아른한 기억이,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통상 개방을 요구했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외국 함대가 정박했던 근현대사 민족의 아픔이 깃든 인천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섬 전체 면적은 공유수면을 포함해 12만2천㎡이나, 육지부만 보면 동구에 소재한 송현근린공원 크기와 비슷한 7만2천㎡ 규모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우거진 나무에 둘러싸여 마치 도심을 벗어난 착각이 들 정도다.

 섬 정상에는 해방 이후인 1949년에 설치된 무인등대가 잘 보존돼 관리되고 있으며,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에게 명실 공히 등대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인천항 풍경도는 가히 볼거리 중의 하나며, 인천항을 오고 가는 뱃고동 소리만으로도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이곳에 잠시 머물며 섬 이름을 프랑스 함대의 이름을 따 ‘보아제’라고 불리기도 했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인들이 섬에 나무가 많다 해서 ‘우드아일랜드’라 부르기도 했다.

 원래 섬 이름은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 해 ‘물치섬’이라 불렀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의 소유로 넘어가면서 작약꽃 봉우리를 닮았다고 해서 ‘작약도’로 불렸으며, 월미도와 함께 인천의 대표 휴양지로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작약도’라는 이름 대신 현명했던 우리 조상들이 넋과 혼을 담아 명명했던 정체성 있는 ‘물치도’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해 보고자 한다.

 지명은 그 속에 역사가 있고,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그것을 살리고 알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광복 후 작약도에는 성육보육원이 운영되다 한국전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이후 민간에서 매입해 여러 차례 개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면서 결국 인천시가 발 벗고 나서 유원지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영종도 구읍에서 작약도를 잇는 1.2㎞ 대규모 ‘집라인’ 설치와 도보다리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나왔다.

 자칫 유원지가 위락단지로 전락해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가 파괴되는 과오를 범해 인천만이 갖고 있는 개항과 근현대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망실될까 우려된다.

 이곳 작약도는 현재 아름드리 소나무와 자연적으로 생존한 대나무 군락단지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생태공원 그대로 시민에게 개방해 둘레길 조성 등 쉼터공간과 힐링 장소로 보존돼야 할 것이다.

 또 19세기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외세의 침략에도 굳건히 지켜낸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이용돼야 한다.

 작약도 유원지 조성을 위해 필요한 개발은 하되, 본 섬 부분은 손을 대지 말고 섬 주변의 매립되는 부분을 활용해 필요한 시설물을 짓고 자연을 보호하면서 생태를 보존해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안한 섬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숨 쉬며 누리고 있는 자연은 본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연을 소중히 아끼고 보호해 미래 세대도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원래대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작약도의 유원지 개발 방향은 인천시 단독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동구와 이해관계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돼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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