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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아베가 싫지만 고마워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일본과 아베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동안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후보자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 왔다"고 말할 때 과연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하고 궁금했던 그것이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문제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과 다섯 살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추정 사인(死因)은 ‘굶주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녀는 지난 겨울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었다고 한다. 공무원은 이혼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 공약으로 폐지가 약속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 명분이라고 한다. 한데 그녀의 전 남편은 중국인이었다. 먹을 것조차 없는 그녀가 무슨 수로 중국인을 찾아 서류를 받아 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 사회적 약자가 신세를 탓하면서 끝내야 하는 세상일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달 초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약자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예산 삭감이 이뤄졌다. ‘의료급여 경상보조금’은 저소득층 의료서비스에 쓸 돈이다. 이 예산을 정부안에서 763억 원이나 깎았다.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비’도 55억 원, ‘지역아동센터 지원비’도 19억 원을 줄였다. 정부 역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앨버트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허무주의가 지배전략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바꾸려고 노력해봐야 소용없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는 걸 강조하는 전략이다. 공정성에 민감하고 원칙과 상식 속에서 변화를 갈망해 온 많은 이들에게 허무주의가 팽배해질수록 정치 불신은 높아지고 보수가 운신할 공간은 확장된다.

 보수정치 세력과 보수언론이 아베보다 반문재인에 앞장서고, 진보의 이중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법의 외피를 내세워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부터 한참 역겨운 판에 이번에는 청문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연 기자간담회에서 "특혜가 아닌 보편적 기회"라는 표현을 사용해 서민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한껏 조롱(?)했다. 과연 저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궁금한 건 정부·여당이 아베의 도발과 조국 청문회와 관악구 아사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가진 여러 기득권적 요소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생각하는 이들, 그런 사회적 자본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방식’이 되면 그 틈새를 이용해 사적(私的) 이익을 챙기면서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나쁜 금수저’들과 싸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보세력인 척하고 있는 건 모두들 삼가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주의자들의 ‘허무 조장’이나 진보주의자들의 ‘공정성 빈곤’은 다같이 미래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자기편에 유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진정 탈피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치·경제적으로 상위 10%에 있는 이른바 엘리트 집단에서 뜨거운 관심은 말로만 하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만들기’와 ‘조국을 끌어내려 보수의 꼰대성과 대척점을 무너뜨리기’에만 몰두할 뿐 사회적 약자의 위기는 그저 이용할 대상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손을 놓고 혀를 차야 하는가 말이다.

 아베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한일 분쟁이 양국 시민사회는 물론 누가 역사 앞에서 더 정의로운가, 누가 더 평화를 추구하는가, 누가 더 다양성을 존중하며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인가 하는 성찰을 빼놓으면 안 되겠다.

 조국의 인사청문회에서 ‘기회는 평등하지 못했고, 과정도 조정하지 못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이들이 다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미 일선 공무원 52.2%(임완섭 박사 연구, 2017)가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 사각지대 발생의 주 요인이 선정 기준의 엄격성을 지적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나 마무리가 제대로 돼야 할 것이다. ‘정답’은 나와 있고, 그걸 지켜야 정말 제대로 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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