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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글은 흔히 소통의 수단이라고 한다. 인류는 글을 통해 비로소 인류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모이면 문화라고 하고 문화들이 쌓이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역사라고 지칭하게 된다.

 사실 글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하게 마련이다. 글은 훌륭한 작가나 사상가에 의해 발전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일의 문호 괴테가 없었다면 독일어는 아직 변두리 언어로 있었을 것이고 중세의 걸작 신곡을 쓴 단테가 없었다면 이탈리아어도 같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를 보면 글이 없어 중국 글을 얻어 쓰다 겨우 세종에 와서야 우리 글을 가질 수 있었다. 그마저도 소위 사대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하층민의 글로 천시했다. 우리 글이 없다 보니 우리 생각을 담을 그릇이 마땅히 없었고 결국 우리 생각이 큰 발전을 못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영어책으로 공부를 하면 미국의 생각을 따라 갈 수는 있어도 넘어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글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생각이 없다면 당연히 글은 표현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유야 여럿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교육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초중고 교육체제가 대학을 가기 위한 기예만을 가르치고 있고 대학 역시 취직을 위한 기술만을 중시하고 있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상이다. 인터넷 입시사이트에서 대학 입시논술을 위해 그 어려운 서양 철학가의 책을 5분간 동영상으로 간단히 요약 정리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암기 위주 환경에서 어떻게 자기 생각을 만들 수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육된 학생들이 당연히 논리적 사고와 판단보다는 말초적인 기능체에 불과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더욱 큰 문제는 한창 교육을 받을 나이에 소위 글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 입시 특성상 폭넓은 교양보다는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이다 보니 참고서와 교과서에 의존해 대학에 오게 되고 대학 시절 역시 전공서적 외에는 글을 가까이할 기회가 거의 없게 된다. 만약 이공대 쪽이라면 그야말로 글과는 완전히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일상적으로 카톡이나 페이스북를 쓰다 보니 짧은 문장에 더 익숙해지고 요새는 아예 글자는 없고 소위 이모티콘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주위가 빠르고 직설적인 반응에 익숙하게 돼 조금 긴 문장은 보기도 버거워 한다. 최근에는 글보다는 사진이나 영상이 더 보편화되는 것 같다. 초등학생조차도 검색할 때 동영상 유튜브를 활용한다고 한다. 이것이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짧은 문장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생각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란 어떤 일정한 형식이 있고 이 형식에 맞춰 글로서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을 말하는 데 짧은 문장에 익숙하면 생각의 흐름을 잡을 수 없고 이를 글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렇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예컨대,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보면 철자법 등 기본적 문법은 고사하고 문장 핵심과 흐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험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 글 쓴 본인도 무엇을 썼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입시와 같이 경직된 사회체제나 카톡에서와 같은 단문에 익숙하다 보면 생각을 깊이 하는 일이 줄게 되고 결국 이러한 환경이 오히려 생각 자체를 제한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머리에 축적된 지식이 부족하다면 더욱 생각이 할 여지가 없게 된다. 미래에도 상황은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는 「호모데우스」라는 책에서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지배하는 미래 세상을 언급하고 있다. 기계가 우리의 생각과 글을 대체해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는 생각하는 기능조차 필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글을 읽고 생각하고 글로서 표현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초중고의 교육기관에서는 고전과 같은 독서에 많은 비중을 둬야 할 것이고 대학에서도 자기 생각을 피력하고 글을 표현할 줄 아는 보통 교양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현대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 회복을 위해 해야 하는 길은 다시금 우리가 글을 세우고 생각을 다듬는 일이 아닐 까 싶다. 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발명품이다. 글을 잃어버린 세대는 생각도, 문화도 그리고 역사도 같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글을 아낄 줄 알고 글쓰기나 읽기를 장려하는 사회가 돼야만 어떤 발전된 문명 기기가 나타나도 우리 생각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생각을 낚고 남길 수 있는 방법이 결국 글이라는 생각에 단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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