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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국내든 국외든 체류지를 임의로 옮길 수 있고, 다양한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기본법인 거주이전의 자유는 공공복지에 위배되는 경우 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데, 그 예가 전자발찌 부착이나 접근금지명령이다. 주로 성범죄자나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피의자들이 받게 되는 이 제한 조치는 범죄 가능성이 있는 자의 위치를 감시하거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이 같은 대처는 피해사실이 확인됐을 때 가능하다. 단순한 심증이나 추측만으로는 함부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범죄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확한 피해사례를 증명할 수 없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 ‘케이프 피어’는 이처럼 사각지대에서 괴롭히는 가해자와 고통받는 피해자를 다룬 작품이다.

 변호사로서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샘과 그의 가족은 맥스 케이티의 등장으로 패닉에 빠진다. 가족 같이 지내던 개가 독극물로 사망하는가 하면, 샘의 딸인 낸시는 맥스를 피해 달아나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독극물에 대한 증거도, 맥스가 낸시를 쫓아가거나 위협했다는 정황도 입증할 수 없었기에 이 가족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들의 악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폭행사건을 목격한 샘은 법정에서 이를 증언하고, 그것이 결정적 증거로 채택돼 맥스는 8년형을 선고받는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맥스는 출소 뒤 샘을 찾아가 그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선언한다. 분노에 찬 영악한 전과자는 볼링장이나 바닷가, 대로변 등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장소에서 마치 우연인 듯 샘의 가족과 만나곤 했다. 그의 스토킹이 잦아질수록 가족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법은 너무 멀리 있었다. 결국 샘은 사설 탐정과 불량배를 동원해 맥스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였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법을 선택한다.

 평온한 가정을 지능적으로 파괴하는 범죄자와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케이프 피어(1962)’는 1991년도에 리메이크된 바 있는 심리스릴러의 고전이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보는 내내 공포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늘함을 선사할 영화로도 제격이지만 법의 딜레마를 오래도록 곱씹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권력이 남용돼서는 안 되겠지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법은 무기력할 따름이다. 그 결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법보다 주먹을 택한 변호사의 선택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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