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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인어 공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Andersen, Hans Christian. 1805~1875)의 창작동화 「인어 공주」의 주인공이다.

 

 코펜하겐의 한 해변에서 덴마크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하는 ‘인어 공주 동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한 적이 있다. 동화 속의 그 인어 공주를 처음 보는지라 큰 감동이 밀려올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화 속의 인어처럼 하반신이 비늘로 덮인 물고기 형상이 아닌 점도 그랬고, 인어 공주가 앉아 있는 곳이 실제로 인어 공주가 등장할 듯한 아름다운 바닷가가 아니라 공장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라서 더욱 실망이 컸다. 게다가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려는 듯 요란하게 동상 주변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인어 공주를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인데다가 패키지 여행 필수 코스라서 찾긴 했지만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인어 공주 동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세계적인 명소로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 어릴 적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의 강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안데르센은 「인어 공주」를 비롯해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눈의 여왕」, 「벌거숭이 임금님」, 등 수많은 명작 동화를 남긴 덴마크의 동화작가다. 그의 동화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가 주된 무대이면서도 인간애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데르센은 교훈적 요소가 강했던 당시의 동화 패턴에서 벗어나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다뤘고, 다른 동화들처럼 늘 행복한 끝을 맺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의 동화는 주인공은 물론 줄거리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어려서 경험한 일은 잠재적(潛在的)으로라도 오래 남는다는 것이 맞다.

 만화와 동화 읽기를 특히 즐겼던 나의 어릴 적 꿈은 한때 ‘만화 가게’나 ‘책방’의 주인이 되는 거였다. 그런 때문인지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도 청소년들이나 볼 법한 웹툰(webtoon)을 즐기고,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하여 애니메이션(animation)으로 재탄생한 영화들도 즐겨 보는 편이다. 더욱이 만화와 동화의 캐릭터나 스토리와 관련된 곳을 보면 관심이 많고 반드시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얼마 전에 우연히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의좋은 형제’ 공원을 가본 일이 있다.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형제가 서로의 형편을 걱정해서 형은 아우의 집에, 아우는 형의 집에 몰래 볏단을 날라 주려다 마주쳐 형제간의 우애를 확인했다는 따뜻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둘러봤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흥부 놀부’처럼 설화(說話)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세종실록에도 기록돼 있는 이 고장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지자체에서는 형제의 우애와 효행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하고, 형제의 모습도 만들어 세웠으며, 매년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를 소재로 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전혀 감흥이 없이 ‘인어 공주’를 만나던 때와는 달리 ‘의좋은 형제’의 모습을 보니 다소 조악(粗惡)하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훨씬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곳을 자녀들과 함께 찾아서 형제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직접 보고 느껴보게 하는 것이 잦은 잔소리보다 훨씬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에 특이한 저자들이 특별한 책을 출판한 일이 있었다. 「스토리 텔링 교과서 속 인물 여행」이란 책인데, 그 당시 일반에게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관심 있게 살펴본 일이 있다. 공동저자 네 명은 모두 한 가족이었는데, 여행 작가인 엄마와 과학 선생님인 아빠,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그들이다.

 수도권과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을 다섯 권역으로 나눠 여러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과 관련된 곳을 실제로 여행할 수 있게 한 안내서였다. 「인어 공주」처럼 잘 알려진 동화의 주인공을 찾아보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잘 알려진 예술가나 유명 작가들도 포함돼 있어서 학생들의 어릴 적 추억 만들기에는 매우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된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와 흥미로운 비사(秘史)를 알아가는 재미까지 있어서 직접 체험해본 아이들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게 분명하다. 다른 나라에까지 찾아가 잔뜩 실망하면서 ‘인어 공주’를 만나보고 나서야 새삼 우리 땅 곳곳에도 안데르센 동화 이상의 스토리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나도 참 지난 세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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