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로 흩어진 가족들이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에 한데 모인다. 친지 간 정을 나누며 마음속 허전한 한 구석을 채운다. 바리바리 싸 온 짐을 풀어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놓고, 같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 가족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한 번 웃고, 따뜻한 말을 주고받으며 한 번 더 웃는다. 하지만 이도 몇 차례. 푸짐한 명절상을 차리는 데는 매번 수고가 따른다. 쉴 새 없이 전을 부치고, 음식들은 소분해 상을 차린다.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 몇 번이고 허리를 부여잡는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것이 외식이다. 수고도 덜고, 반복되는 식단이 물릴 때 즈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명절음식으로 느끼해진 속을 달랠 식당은 어디일까. 오랜 시간 그만의 운영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긴 세월을 나고 있는 인천의 오래된 가게, 노포(老鋪)를 추천한다.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끼리 차를 나눠 타고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가게를 찾아 나선다면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다.

▲ 대풍식당 장상권 대표
# 대풍식당(강화 대룡시장)

강화군 교동면 대룡시장에 위치한 냉면과 국밥 전문점. 피란민들의 애환이 담긴 시장을 구경하면서 50여 년 세월이 담긴 국물을 목으로 넘길 수 있다.

음식 맛은 사장 내외가 오랜 시간 연구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찾아낸 비법에서 나온다. 특이하게 냉면 육수를 고기가 아닌 채소와 과일로 낸다. 냉면이 건조돼서 나오고 냉장시설도 지금과 같지 않았던 시절에 맛을 살릴 방법을 찾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 탄생한 비법이다.

고기국밥 역시 냉면에 뒤지지 않았다. 따로국밥이 유명한 부산에서도 소문을 듣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으며, 포장해 가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밑반찬은 오이소박이와 김장김치 단 두 개다. 하지만 직접 농사 지어 수확한 오이와 배추로 만들어진 건강한 두 종류의 김치로 손이 자꾸만 간다.

▲ 상큼한 맛 냉면
대풍식당을 한 번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이곳을 찾는다. 50여 년간 이어온 맛을 지켜야 한다는 사장 내외의 책임감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해 손님들이 꾸준히 찾게 만든다.

대풍식당의 시작은 1960년대 후반 문을 연 대풍옥이다. 황해도 연백 출신의 실향민이었던 고(故) 송순녀(1925~2014)1대 사장이 창업한 뒤 식당 이름을 ‘손님들이 바람처럼 밀려들어 오라’는 의미로 ‘대풍(大風)’이라 지었다. 추석 당일에는 문을 닫으며, 오전 11시∼오후 7시 영업한다.

▲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 우순임 사장.
#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동구 만석동)

주꾸미는 타우린이 많아 피로 회복이나 숙취 해소에 안성맞춤이다. 둥근 탕용 냄비에 빨간 양념과 양파, 콩나물 등과 함께 버무려진 주꾸미와 그 위에 미나리 한 움큼이 얹혀져 군침이 절로 돌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주꾸미 볶음을 맛볼 수 있다.

테이블 가운데 있는 가스불에 냄비를 올린 후 약한 불에서 5~10분 익히면 주꾸미에서 하얀 빛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앞접시에 주꾸미와 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무침이나 무채무침을 곁들여 먹으면 입안에서 절로 탄성이 나온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냄비 안에 있는 빨간 주꾸미와 콩나물을 같이 먹으면 주꾸미 볶음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 화끈한 맛 주꾸미
주꾸미를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볶음밥을 꼭 주문하라. 식사량에 맞게 볶음밥을 주문하면 가게에서 일하는 손자가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윤기가 잘잘 흐르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주꾸미 볶음의 마지막 코스 볶음밥을 먹어야 비로소 할머니 주꾸미 볶음을 정복했다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주꾸미 볶음뿐 아니라 주꾸미 데침, 주꾸미 샤부샤부, 가오리 무침, 가오리 매운탕, 소라 등 메뉴도 다양하다. 특히 모든 메뉴들은 국내산이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마지막 주문은 오후 9시까지 받는다. 단, 추석 당일에는 문을 닫는다.

▲ 경인면옥 함종옥 대표.
# 경인면옥(중구 내동)

처음 평양냉면을 맛보는 이들은 이도 저도 아닌 맛이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식초와 겨자를 듬뿍 타 먹는 일반적인 냉면 맛에 길들여져 육수가 싱겁다고 느낀다. 또한 면이 안 익었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빠르면 수일 내로, 늦으면 몇 주 지나지 않아 평양냉면을 찾는 자신을 보게 된다.

70년 전통의 경인면옥 냉면은 정성과 자부심으로 맛을 낸다. 6시간 이상 센 불에서 육수를 끓이면서 기름을 걷어낸다. 이어 육수를 하루 동안 식힌 뒤 다시 기름을 걷어내고 냉장실에 넣었다가 빼 굳어진 기름을 또 걷어낸다. 그리고 육수를 다시 끓인 후 거름종이로 기름을 걷어내는 등 이 같은 과정을 수차례 거쳐 맑은 육수를 만든다.

▲ 깔끔한 맛 평양냉면
면과 고기는 최상품을 쓴다. 면은 깨끗하게 도정한 메밀로 뽑아 유백색을 자랑한다. 고기는 1등급 이상 국내산 한우만 사용한다. 소금도 3년 이상 묵은 천일염이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사장은 수십 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경인면옥의 역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최소 100년은 음식 맛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나 손님들이 다시 와도 그때 그 맛, 변하지 않는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백화점에 입점하라거나 분점을 내자는 유혹도 모두 거절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보답으로 일관된 맛의 냉면을 손님상에 내겠다는 그의 다짐을 믿어 보시라. 오전 11시∼오후 9시 영업한다.

▲ 호구포식당 최태영 사장.
# 호구포식당(남동구 논현동)

소머리국밥과 육개장 전문점이다. 1990년대 소래역 근처 버스회사 직원들의 단골식당이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지정한 음식점이 있었지만 기사들을 포함한 직원들은 호구포식당에서 사비를 들여 한 끼를 해결했다. 2000년대 중반 소래와 논현동에 택지개발이 진행되면서 단골손님이 줄었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온라인상에 소문이 나며 타지에서도 손님들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호구포식당의 자랑은 육수다. 육수의 맛을 원재료에서 그대로 뽑아낸다. 육수에 대해서 만큼은 타협이 없다. 꼬박 하루가 걸려 뽑아내는 국물을 손님상에 내놓는다는 자부심으로 장사를 한다. 공장표 국물을 쓰면 마진이 많이 남고 고생도 덜하다는 주변의 권유에도 손님들에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뽀얀 국물에 빨간 양념장을 넣어 칼칼하게 먹어도 일품이다. 직접 담은 고추 장아찌와 겉절이, 총각김치, 파김치 등도 별미다. 국물 한 모금에 각종 찬들이 어우러져 내는 다양한 맛이 입안에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 진한 맛 소머리국밥
현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남자 사장은 1대 사장의 아들이다. 그는 1대 사장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모친의 손때 묻은 곳을 타인에게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아 직접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철없던 아들이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육수 비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더했다. 추석 당일에는 문을 열지 않지만 이른 아침인 오전 8시부터 손님을 받는다. 마지막 주문은 오후 8시까지다.

장원석 기자 stone@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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