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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더 애착을 가진 것은 그보다 먼저 쓴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다. 그가 오래 몸담았던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가르친 것은 당시에는 학문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경제학이 아니라 도덕철학이라는 과목이었다. 따라서 그가 더 오랜 시간 고민했던 문제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끼치는 영향이었다. 국부론은 그가 교수를 그만두고 어느 귀족 자제의 가정교사가 돼 프랑스를 여행하고 온 이후에 집필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케네 등을 중심으로 소위 중농학파라 불리는 고전경제학의 맹아가 싹트고 있어 영국보다 경제학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었다.

현대 경제학의 대가 그 중에서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 중에서도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어보지 않고 심지어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는 애덤 스미스에 대한 현대 경제학자들의 무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스미스가 평생 고민한 문제는 국부론으로 대변되는 근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문제 그리고 도덕감정론으로 집약되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문제 그리고 출간되지는 아니했지만 강의록으로 남아 있어 사후 새롭게 조명된 법학(jurisprudence) 문제이다. 스미스는 이들 세 가지 시각 즉 경제학과 윤리학 및 법학이라는 사회과학적 시각이 종합적으로 적용될 때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미스 사후에 소위 ‘애덤 스미스 문제(Adam Smith Problem)’가 경제학계 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스미스가 남긴 두 저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이에 논리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 20세기 초 독일의 역사주의 학파를 중심으로 제기된 비판이었다. 즉 국부론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스미스가 원래 쓴 표현은 self love였다)이 시장경제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라고 주장한 반면 도덕감정론에서는 동감(sympathy)이 인간 사회의 기본 원리로 부각돼 이 두 가지 원리가 상호 모순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가 죽기 전 도덕감정론을 수정할 때 이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별 다른 수정을 가하지 않았으며 그가 생각한 근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인간 사이의 동감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기본적 윤리와 도덕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즉 시장경제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타인을 배려하고 상호 간 공감대 형성을 염두에 두는 절제된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작금에 온 나라를 두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게 만드는 법무장관 임명 문제를 보면서 스미스가 제기한 경제와 윤리 그리고 법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스미스에게 윤리는 시민사회의 공감대 문제로서 경제와 법 양쪽에 영향을 주는 기본 원리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윤리와 법은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요소이다. 법만 지키면 된다는 논리로 즉 불법이 아니지 않느냐의 논리로만 이번 사태를 보려고 하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회는 그만큼 구성원의 동감 수준 즉 공감대 형성의 질이 높다. 흔히 이야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번 사안은 사회의 통념과 상식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오늘날은 학문의 분화가 심화되어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는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21세기에 스미스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시각과 안목이 필요하고 분화된 학문을 다시 연결해 융합하고 통합하는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를 지키는 것도 사람이다. 법대로 하자고 하면 소송을 하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면 된다. 세상일이 법대로만 하자고 하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엄청 커져서 그 사회는 효율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게 된다. 법 이전에 제도로 그리고 시민사회의 의식과 통념 및 상식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돼야 그 사회가 선진사회가 되고 성숙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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